항목 ID | GC09501300 |
---|---|
한자 | 文學 |
영어공식명칭 |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호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및 작품.
[개설]
서천의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서천의 자연과 역사가 중요한 요소로 내재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고전 문학의 일반적인 현상처럼 서천 지역에서의 고전 문학 역시 관리로 등용되기 위한 관문 역할을 하였고, 양반 계층의 중요한 소통과 교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독자적인 예술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시대적 가치, 즉 충과 효를 강조하는 도덕적 윤리를 담는 수단이었다. 서천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근대 문학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이 물려준 고전 문학의 자산과 주변 지역의 근대적 문물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고전 문학의 대표적인 문인과 작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인으로는 고려 후기 한산 출신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을 들 수 있다. 이색은 한산 이씨(韓山 李氏) 명문가 출신이며, 할아버지 이자성(李自成)과 아버지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 또한 고려 조정에서 중책을 맡았던 문인이었다. 이색의 둘째 아들 이종학(李種學)[1361~1392]도 문인이었고, 증손 이개(李塏)[1417~1456]는 사육신(死六臣)으로 명망이 높았다. 이곡은 100여 편의 시와 함께 수필 「차마설(借馬說)」, 가전체 소설 「죽부인전(竹夫人傳)」을 남겼다. 이색은 방대한 문집을 남겼는데, 특히 한산의 아름다운 풍경 여덟 곳을 시로 읊은 「한산팔영(韓山八詠)」이 유명하다. 이종학은 고려 후기~조선 전기 정치적 풍랑 속에 살해되는 불행 속에서도 문집을 남겼다.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는 화양 출신이며 뛰어난 문재임에도 불구하고 당파의 차이로 관리 등용이 되지 못하였다. 그런 중에도 손에서 시를 놓지 않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신광수가 남긴 시 중에는 창으로 불린 것도 많다. 또 우리나라 고유의 문학 갈래인 시조의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서로 『석북집(石北集)』 16권 8책이 전한다.
여류 시인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1492~1549]과 부용당 신씨(芙蓉堂 申氏)[1732~1791]도 대표적인 문인이다. 임벽당 김씨는 부여 출신이지만 유여주(兪汝舟)[1477~1545]와 혼인하여 비인현 도화동[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에서 살았다. 시, 문, 자수에 뛰어났으며 『임벽당칠수고(任碧堂七首稿)』 등에 작품을 남겼다. 부용당 신씨는 한산군 숭문동[현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출신이다. 부용당 신씨가 손수 엮은 『부용당집(芙蓉堂集)』이 여러 권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여지지 않는다. 다만 근래에 편찬된 『부용시선(芙蓉詩選)』이 세 명의 남자 형제 문집들과 함께 『숭문연방집(崇文聯芳集)』에 실려 전하여 온다. 부용당 신씨의 시는 일상생활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꿈속에 노는 금강산」 같은 작품은 부용당 신씨의 호연한 기상, 시적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한 시로 평가받는다.
[근대 문학의 대표적인 문인과 작품]
신석초(申石艸)[1909~1975]는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출신이며, 본명은 신응식(申應植)이다. 1937년 서정주(徐廷柱)[1915~2000]·김광균(金光均)[1914~1993]·윤곤강(尹崑崗)[1911~1949] 등과 함께 ‘자오선(子午線)’ 동인으로 참가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바라춤」은 전체 45연 427행으로 된 장시인데, 세속과 열반 지향의 삶 사이에서 번뇌를 떨쳐 내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나태주(羅泰株)[1945~ ]는 1945년 기산면 막동리 출신이다.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전통적이면서 간결한 구조의 서정시를 50년 이상 꾸준히 창작하여 제1시집 『대숲 아래서』[1973], 『좋은 날 하자』[2023] 등 시집 50여 권을 발간하였으며, 시선집, 산문집, 동시집, 동화집 등 모두 150권이 넘는 저서를 발간하였다. 나태주의 대표작 「풀꽃」은 2002년 ‘광화문글판’에 게시되면서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국민시’ 반열에 올랐다.
시초면 출신 구재기(具在期)[1950~ ]는 1978년 「으름넝쿨꽃」, 「입추」가 전봉건(全鳳健)[1928~1988]에게 추천되어 『현대시학』을 통하여 등단하였다. 주로 농촌의 삶의 애환을 중심으로 한 시를 창작하고 있으며, 불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즐겨 시 속에 담고 있다. 제1시집 『자갈 전답』[1983]을 비롯하여 20여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서천의 대표 소설가로는 구인환(丘仁煥)[1929~2019], 박경수(朴敬洙)[1930~2012]를 들 수 있다. 서천군 마서면 출신 구인환은 1960년 『문예』에 소설 단편 소설 「동굴 주변」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소설집으로는 『산정의 신화』, 『뒹구는 자화상』, 『모래성의 열쇠』가 있고, 장편 소설로는 『일어서는 산』, 『별들의 영가』, 『동트는 여명』 등이 있다. 2005년 『운당 구인환 문학전집』을 27권으로 완간함으로써 양적, 질적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박경수는 한산면 출신의 농민 문학가이다. 25세에 군에 입대하여 작가 수업 끝에 1955년 『사상계(思想界)』 창간 2주년 기념 현상 공모에 단편 소설 「그들이」가 입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농촌의 생활상과 애정 윤리를 추구하는 단편만 쓰다가, 1969년 『신동아』에 장편 소설 『동토(凍土)』를 발표하면서 작품 세계를 넓혔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 『흔들리는 산하』, 『청산별곡』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는 『비비』가 있다.
서천 출신 희곡 작가로는 박서림(朴西林)과 오태석(吳泰錫)[1940~2022]이 유명하다. 오태석은 시초면 출신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희곡 「웨딩드레스」[1967]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듬해 국립극장과 『경향신문』이 공동으로 공모한 장막극에 「환절기」가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실험적이고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논란과 뜨거운 호응을 동시에 얻었다. 대표 작품으로 「초분」, 「태」, 「자전거」 등이 있다. 서천 출신의 평론가로는 원형갑(元亨甲)[1929~2004], 신동한(申東漢) 등이 있다. 서천읍 출신 원형갑은 1958년 『현대문학』 4월호에 「표상성과 전통의 문제」, 1959년 3월호에 「앙가주망과 문학의 신비한 체험」 등으로 조연현(趙演鉉)[1920~1981]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진출하였다. 이후 「실존과 문학의 형이상학」, 「해석적 비평의 길」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와 사회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주력하였다. 서천읍 출신 신동한은 1953년 『서울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줄곧 언론계에서 활동하였다. 1959년 『자유문학』 2월호에 「휴머니즘과 작가정신」이 추천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염상섭(廉想涉)[1897~1963], 채만식(蔡萬植)[1902~1950], 안수길(安壽吉)[1911~1977] 등 근대 문학사의 주요 작가들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꾸준히 하였다. 신동한의 평론은 인간성의 제고 및 현실 인식의 문학을 지향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