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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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芙蓉詩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경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32년 - 신부용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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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91년 - 신부용당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75년 - 『부용시선』 『숭문연방집』에 수록 |
배경 지역 | 서천군 - 충청남도 서천군 |
성격 | 문집 |
작가 | 신부용당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인 조선 시대 여성 문인 신부용당의 문집.
[개설]
『부용시선(芙蓉詩選)』은 조선 시대 여성 문인 신부용당(申芙蓉堂)[1732~1791]의 한시, 수필, 논(論) 등의 문학 작품이 수록된 문집이다. 1975년 한국한문학연구회에서 간행한 영인본 『숭문연방집(崇文聯芳集)』에 실려 전하여 내려온다.
[구성]
『부용시선』은 시 23편, 서 2편, 제문 2편, 잡저 4편, 부록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신부용당은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여성 문인이며, 별호는 산효각(山曉閣)이다. 18세기 조선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 기록(騎鹿) 신광연(申光演)[1715~1778], 진택(震澤) 신광하(申光河)[1729~1796] 세 사람은 신부용당의 오빠들이다. 신부용당은 충청도 한산군 숭문동[현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에서 오빠들과 함께 공부하며 문학적 천재성으로 주목을 받고, 당대 명문장가인 오빠들의 문풍에 힘입어 많은 문학 작품을 창작하였다.
신부용당의 친정 집안은 아버지 신호(申澔)[1687~1767] 대에 이르러 가세가 점점 기울어 서울에서 낙향하여 한산군에 정착하여 살았다. 신부용당은 혼인한 이후에도 시댁이 있는 전라남도 해남에 살지 않고, 줄곧 친정이 있는 한산군에서 살았다. 남편 윤운(尹惲)[1730~1773]이 해남과 한산군을 오가며 살았다. 신부용당의 시가 쪽 친척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신부용당의 둘째 아들 윤규응(尹奎應)[윤지눌(尹持訥), 1762~?]의 묘지명에 밝힌 바에 따르면, 신부용당이 손수 엮은 시집인 『부용당집』이 여러 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전하여지지 않는다. 나중에 엮은 『부용시선』이 세 오빠의 문집과 함께 『숭문연방집』에 실려 있다.
다양한 문학 작품을 수록한 여성 문집 『부용시선』은 서, 제문, 잡저 등의 형태를 갖춘 문집이다. 대표 작품으로 한시 「몽유금강산(夢遊金剛山)」, 「송이이형(送李二兄)」, 수필[편지] 「답이이형서(答李二兄書)」, 논(論) 「논천자흥망지리(論天子興亡之理)」를 들 수 있다. 신부용당은 “나의 소원은 금강산을 보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금강산 여행을 꿈꾼 여성이었다. 시 「몽유금강산」은 조선의 여성으로 태어나 현실에서 가 볼 수 없었던 금강산을 꿈속에 찾아가 노닌다는 내용이다. 5언 20구 100자로 표현한 기개 넘치는 시이다. 신부용당은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고 남편이 묻혀 있는 해남의 화산(花山)에 합장되었다.
[특징]
『부용시선』은 조선 시대에 서, 제문, 잡저 등 다양한 형태의 문학 작품을 수록한 여성 문인의 문집이다. 신부용당의 글은 일상생활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읊은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부용시선』은 남성 문인들이 주류였던 조선 시대에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드러낸 여성 문집이다. 당대의 문장가들인 세 오빠와 나란히 시재(詩才)를 겨룰 정도로 문학적 천재성을 지닌 여성의 문집이라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의 다양성에 기여하였다. 신부용당과 오빠들, 후손들의 문장 활동이 대대로 활발하여 신씨 집안 사람들이 살던 고향 일대는 ‘숭문동(崇文洞)’으로 불렸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