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북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310
한자 石北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석북집』 간행
성격 시문집
저자 신광수
간행자 신관휴
권책 16권 8책

[정의]

1907년 간행된 서천 출신인 조선 후기 문신 신광수의 시문집.

[저자]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는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출신이다. 신광수는 뛰어난 문재에도 불구하고 당파의 차이로 관리 등용이 되지 못함으로써 가난에 시달려야 하였지만 손에서 시를 놓지 않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남긴 시 가운데는 창으로 불린 것도 많다. 신광수는 우리나라 문학 갈래인 시조의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광수의 고향에 이러한 사실을 기념하는 시조명칭유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호암리에 있는 봉서사 극락전 현판 글씨가 신광수의 유필로 알려져 있다.

[편찬/간행 경위]

『석북집(石北集)』은 1906년 5대손 신관휴가 신광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시문집이다. 이 밖에 신광수의 아들 신우상, 신기상이 신광수의 사후에 시문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엮은 필사본 8책이 따로 전한다. 1973년 신석초가 『자하시집』과 합본으로 『석북시집』을 초역하여 간행하였다. 1975년 한국한문학연구회에서 16권 8책의 목판본을 『기록초음』, 『진택문집』, 『부용시선』 등과 합본하여 『숭문연방집』이라는 제목으로 영인하여 간행하였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서지]

16권 8책으로 목판본이다. 책머리의 서문은 1906년에 장석룡이 썼고, 권16의 부록으로 행장(行狀)과 연기(年記)가 있으며, 끝에는 신관휴의 발문이 있다.

[구성/내용]

『석북집』 권1은 시 313수, 권2는 관서록 시 70수, 권3은 시 177수, 권4는 시 176수, 권5·6은 여강록 시 322수, 권7은 탐라록 시 97수, 권8은 시 181수, 권9는 시 184수, 권10은 「관서악부」를 포함한 시 188수, 권11은 서(書) 52편, 권12는 서 46편, 권13은 서 24편, 소(疏) 1편, 상량문 1편, 권14는 제문 31편, 권15는 서(序) 14편, 권16은 잡저 11편 등으로 구성되었다. 부록에는 행장과 연기(年記)를 수록하였다. 『석북집』에 실린 시는 모두 1,200여 수에 달한다. 권1~4는 서울과 시골에서 벗들과 주고 받은 것들이고, 권2의 관서록은 관서 지방을 여행하면서 읊은 것이다. 권5·6의 여강록은 49세 때 영릉참봉에 부임하여 산수를 노래한 것들인데, 스스로 득의작(得意作)이 많다고 하였다. 권7의 탐라록은 53세에 의금부도사로 제주도에 갔을 때 제주도의 모습을 나그네의 회포와 함께 노래한 것들이다. 권10 「관서악부」는 모두 108수로 된 장편 악부시이다. 평양감사로 부임하는 채제공에게 준 전별시이며 서경을 중심으로 관서 지방에 관한 내용을 담아 향토애, 국토에 대한 긍지, 자주정신, 우국충정 등을 악부의 가락으로 표현하였다. 권16에는 전기적 성격의 전(傳)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석북 신광수는 시대 현실이나 우리 나라의 신화, 역사를 소재로 글을 썼다. 특히 민요풍의 한시로 표현하고 있어 한문학사상 의의가 매우 크다. 신광수의 「등악양루탄관산융마」는 창(唱)으로 널리 불렸으며, 사실적인 필치로 농촌의 피폐상, 관리의 부정과 횡포, 하층민의 고난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시조’라는 명칭에 대하여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영조 때 『석북집』의 「관서악부」15에서 “일반으로 시조의 장단을 배열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이라는 사람이다[一般時調排長短 來自長安李世春]”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구절을 통하여 ‘시조’라는 명칭의 원뜻은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으로 문학 갈래 명칭이라기보다는 음악곡조의 명칭임을 명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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