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팔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303
한자 韓山八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조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328년 6월 17일 - 이색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396년 6월 17일 - 이색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404년 - 「한산팔영」 『목은집』에 수록
배경 지역 이색선생묘일원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35[영모리 312-1]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이색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인 고려 후기 문신 이색의 한시.

[개설]

「한산팔영(韓山八詠)」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한산[현 충청남도 서천군]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한시이다. 「한산팔영」으로 인하여 고려 후기에 한산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구성]

「한산팔영」은 오언 절구로 이루어진 한시이며, 8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1 숭정암송(崇井巖松)

봉두창석용(峯頭蒼石聳)[산봉우리에는 푸른 돌이 솟아 있고]/ 송정백운연(松頂白雲連)[소나무 끝에는 흰 구름이 이어 있네]/ 나한당요격(羅漢堂寥闃)[나한당은 적막하기만 한데]/ 거승잡교선(居僧雜敎禪)[중들은 교종과 선종이 섞이었구나]

2 일광석벽(日光石壁)

최외삽평야(崔嵬插平野)[편평한 들판에 우뚝이 꽂히어]/ 표묘부장천(縹緲俯長天)[아득히 긴 하늘을 굽어보네]/ 취벽승창소(翠壁僧窓小)[푸른 석벽의 조그마한 승방에는]/ 불등공반현(佛燈空半懸)[불등이 반공에 걸리어 있네]

3 고석심동(孤石深洞)

평야행장진(平野行將盡)[평평한 들판이 장차 다하려는데]/ 회봉망경고(回峯望更高)[회봉은 바라볼수록 더욱 높구나]/ 일구유벽처(一區幽僻處)[한 구역의 깊고 궁벽한 곳에]/ 범찰본래고(梵刹本來孤)[절간은 본래부터 외로웠구려]

4 회사고봉(回寺高峯)

후령여삼각(後嶺如三角)[뒤 고개는 삼각을 이루었고]/ 전봉입반공(前峯入半空)[앞 봉우리는 반공중에 들어 있네]/ 행주부철폄(行舟垂鐵碇)[가던 배가 쇠 닻줄 내렸으니]/ 차막유광풍(遮莫有狂風)[광풍이 불어와도 걱정이 없도다]

5 원산수고(圓山戍鼓)

해교전봉화(海嶠傳烽火)[바닷가 높은 산에는 봉화를 전하고]/ 여염압파랑(閭閻壓浪波)[여염집은 바다를 눌러 있구나]/ 백년무사지(百年無事地)[백 년 동안 난리 없는 이 땅에]/ 수고석양다(戍鼓夕陽多)[수자리 북소리가 석양에 잦구나]

6 진포귀범(鎭浦歸帆)

세우도화랑(細雨桃花浪)[가랑비는 복사꽃 물결 이루고]/ 청상노엽추(淸霜蘆葉秋)[맑은 서리 갈대 잎은 가을일세]/ 귀범하처락(歸帆何處落)[가는 돛은 그 어디에 내리려나]/ 묘묘일편주(渺渺一扁舟)[아득히 보이는 한 조각배로다]

7 압야권농(鴨野勸農)

천평원사지(川原平似砥)[냇가의 들은 반반하기 숫돌 같고]/ 화가호여운(禾稼浩如雲)[벼이삭은 구름처럼 질펀하다네]/ 태수최성가(太守催星駕)[태수는 권농 행차를 재촉하여]/ 순전욕석훈(巡田欲夕曛)[땅거미가 지도록 들판을 돈다오]

8 웅진관조(熊津觀釣)

마읍산횡장(馬邑山橫障)[마읍은 산이 담처럼 둘렀고]/ 웅진수칠태(熊津水染苔)[곰나루는 물이 이끼같이 푸르네]/ 조사풍리뇨(釣絲風裏裊)[낚싯줄은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데]/ 흡득월명회(恰得月明回)[밝은 달빛 한껏 안고 돌아오누나]

[특징]

「한산팔영」의 의미에 대하여서 이색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한산팔영을 소나무로 시작한 것은 스스로 책려하는 뜻이고, 낚시질로 마친 것은 곧음을 생각한 것이다. 일광(日光)은 동방에서 나와 원근(遠近)에 두루 미침을 의미한 것이고, 고석(孤石)은 확고한 그 바탕에 드러난 그 우뚝함을 취한 것이다. 회사(回寺)는 군(郡)의 사적(史蹟)을 중히 여기는 뜻이고, 원산(圓山)은 병사(兵事)를 삼가는 뜻이며, 진포(鎭浦)는 백성의 이로움을 보인 것이고, 압야(鴨野)는 백성의 생활을 정립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벼운 일로부터 중한 일로 들어가서 말단적인 것을 먼저 말하고 근본적인 것을 뒤에 말한 것은 곧 진문(晉問)의 글이 당(唐)에서 마친 것을 본받은 것이니, 고을의 선사(善士)들은 감조(鑑照)하기 바란다.”

[의의와 평가]

「한산팔영」은 한산 출신의 고려 후기 학자가 직접 느낀 한산의 아름다움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색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이 배출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학문과 인품을 갈고닦았으며, 기개와 충절을 마음껏 펼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묻혀 있다. 이색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집이 있는 한산은 비록 작은 고을이지만, 우리 부자(父子)가 중국의 과거 시험에 급제한 까닭으로 천하가 모두 동국(東國)에 한산이 있는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훌륭한 경치를 노래로 전파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팔영(八詠)을 짓는 바이다.” 실제로 「한산팔영」 이후로 많은 문인들이 한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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