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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에 이르는 시기까지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역사. 조선 후기 이래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는 서천군, 한산군, 비인현 등 3개의 군현이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행정 구역 체계는 갑오개혁 이후의 개편 과정에서 서천 지역이 속하였던 홍주부(洪州府)도 22개 군으로 개편되었는데, 이때 서천 지역은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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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1905년 비인군수로 부임한 강원로(姜元魯)는 근대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역 유지들과 인창학교(仁昌學校)를 설립하였다. 인창학교는 교육 기능이 정지된 비인향교를 교사로 사용하였다. 교장은 강원로였고 교감은 조돈승, 사무원은 채규철, 윤효석 등이었다. 이후 1907년 서천군수로 부임한 강원로는 군민들의...
개항기·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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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서천 지역은 조선 시대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이었으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개편에 의하여 서천군으로 통합되었다. 비옥한 곡창 지대를 포함하여 일제 수탈의 거점이 되었지만, 3·1운동을 기점으로 다양한 부문의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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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활동하였거나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서천군의 지역민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천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 국내에서 민족 교육과 언론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인물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1850~1927]를 비롯하여 의병과 국내외 독립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45명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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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노동운동.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는 비옥한 농지에서 생산된 미곡의 하역 작업을 위하여 많은 인부들이 모여들었다. 미곡 수탈 과정에서 부설된 경남철도가 서천을 거쳐 장항에 이르면서 철도 노동자들도 유입되었다. 또한, 장항항이 건설되고 장항제련소가 설립되면서 새로운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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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농민운동. 1908년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농업 이민 계획을 수립하여 일본의 농민을 한반도로 이주시켰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 지주, 친일 지주들은 일제의 미곡 수탈 정책에 편승하여 한국 농민들을 수탈하였다. 비옥한 농토를 보유하였던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농민들은 더욱 가혹하게 억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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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소년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여러 방략이 논의되어 수많은 운동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서울, 안성, 명천, 왜관, 고흥, 울진, 이천, 성진, 정주, 예천, 김천, 무장 등지에서 소년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진주에서는 독립 만세 운동까지 시도되었다. 방정환이 주도하여 1922년 5월 1일 천도교 소년회가 ‘어린이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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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청년운동. 일제 강점기 청년은 조선의 현실을 변화시킬 중요한 대안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여러 정치·사회 단체들은 청년들을 전위로 내세워 역사적인 소명을 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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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천민 계급의 신분 해방 운동. 천민 계급인 백정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제상으로는 신분이 해방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차별은 온존하여 교회에서도 교인들이 백정들과 함께 예배할 것을 거부하였고, 행정적으로도 차별받아 호적에 붉은 점으로 표시되었다. 또한 교육 기회도 박탈되어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으며 입학하더라도 백정임이 밝혀지면 퇴학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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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19세기 후반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각 지역에서 의병 활동이 일어났다. 충청남도 홍주 지역에서는 을미개혁의 의복 제도에 반대하여 광천 일대에서 의병 모집이 시도되었다. 단발령이 발표되자 전국적으로 의병 활동의 움직임이 나타났으나 서천 지역에서는 구체화되지 못하였다. 본격적인 의병 활동 움직임은 19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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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일제에 맞서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하여 거족적인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서는 개항 이후 한영학교 등 근대적인 교육 기관들이 설립되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기독교계도 근대 교육과 의식을 전파하여 이후 전개될 만세 운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한편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민 이주와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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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국민들의 모금으로 나라 빚을 갚고자 일어난 국권 수호 운동. 1904년 8월 제1차 한일 협약을 맺은 이후 일본은 화폐 정리 및 시설 개선 등을 명목으로 대한 제국이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차관을 들여오게 하였다. 일본의 계획에는 대한 제국을 경제적으로 일본에 예속시켜 식민지화를 공고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1907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차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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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충청남도 서천 지역을 비롯한 삼남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일으킨 농민 봉기.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은 1894년(고종 31)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대규모 농민 운동으로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이라고도 한다. 1860년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의 최제우(崔濟愚)가 창시한 동학은 봉건적 수탈 구조에 시달리던 농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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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실력 양성 운동의 하나로 전개된 대학 설립 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 의식이 고양되었으며 일제는 문화 통치를 실시하였다. 문화 통치 과정에서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립대학설립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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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동아일보사 주도로 전개된 계몽 운동. 브나로드(V narod)는 제정 러시아 말기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들어가며 외쳤던 ‘민중 속으로 가자.’라는 뜻의 러시아어 구호이다. 1930년대 조선어학회와 언론계 등이 주도하여 한글 보급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동아일보사가 브나로드 운동을 주관하고, 조선일보사가 한글 보급 운동을 주관하였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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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이후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뺏긴 한국인들은 실력양성론에 입각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을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이라고 한다. 애국계몽운동의 사상적 기반은 사회진화론과 문명개화론이었다. 힘에 기반한 인종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서는 결국 한국인도 힘을 키워야 하며, 구체적인 방법은 실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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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3일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이남률 등이 주도하여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방화한 사건.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지역에서는 군산영명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여 3월 5일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만세 운동은 군산 각지로 확대되었고 군산공립보통학교, 군산영명학교, 군산농학교 내에서 학생들도 독립 만세 운동을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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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서남공립보통학교에서 일본인 교사의 횡포에 맞서 동맹 휴학한 사건. 일제 강점기 동맹 휴학은 학생들의 인권 의식, 권리 의식, 민족의식이 표출된 결과였다. 특히 공립학교 교사들의 억압과 차별은 한층 더 폭력적이어서 학생들의 저항도 강하게 표출되었다. 또한 동맹 휴학은 초등 학교와 중등 학교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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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0월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서천공립보통학교에서 일본인 교장의 횡포에 맞서 동맹 휴학한 사건. 3·1운동 이후 일제는 식민지 지배의 폭압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교육 부문에서도 일련의 개량적 조치를 취하며 친일 세력을 육성하고 조선인들에 대한 차별을 자행하였다. 그러자 일선 학교에서 교사, 학생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일제에 대한 저항은 주로 동맹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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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지석리에 거주하던 정원득 등이 참여하여 일제 식민 통치 기관을 파괴하고자 한 사건. 창의단(倡義團)은 만주 북간도와 함경도를 세력권으로 활동하는 이범모가 단장인 독립운동 단체로 러시아 연해주 지역 이범윤 계열 독립군이다. 단원은 1,000명에 이르렀으며 각 지역에서 독립운동과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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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 조신환이 김상만과 화순 신사를 훼손한 사건. 한반도 내 신사는 1876년 개항장에 형성된 일본인 거류지에 처음 설립되었다. 일제 강점기 신사는 한반도에 사는 일본인들이 일본에서와 같은 신앙 생활을 영위하거나 제국 이념을 학습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일제의 사상을 강제 당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많은 한국인들은 한반도 각지에 건립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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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에 단행된 서천군 지역의 행정 구역 통폐합 조치.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가 부제를 실시하고,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관할구역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을 시행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기존의 지방 행정 체제인 13도 11부 317군 4,322면을 개편하여 13도 12부 220군 2,521면으로 정리하였다. 각도의 장관에게 1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