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군 통폐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19
한자 舒川郡 統廢合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범

[정의]

1914년에 단행된 서천군 지역의 행정 구역 통폐합 조치.

[개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가 부제를 실시하고,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관할구역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을 시행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기존의 지방 행정 체제인 13도 11부 317군 4,322면을 개편하여 13도 12부 220군 2,521면으로 정리하였다. 각도의 장관에게 1개월 이내에 종전의 면을 통폐합하게 함으로써 무려 1,801개의 면을 감축하였다. 이에 따라서 군명, 군청 소재지, 면명, 면사무소 소재지를 모두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다. 조선총독부가 통폐합을 진행한 표면적인 이유는 종래의 행정 구역이 호구 수와 토지 결수가 매우 달라서 특히 면의 경우 편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조선총독부 통치의 편의성과 재정 지출을 도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군면 통폐합의 기준은 군의 경우 면적은 40방리(方里), 인구는 약 10만 명을 기준으로 하였다. 면의 경우 호수는 800호, 면적은 약 4방리를 최저 기준으로 삼았다. 이러한 두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군과 면은 각각 통폐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고, 조선총독부의 편의에 따른 통폐합도 있었다.

[변천]

군면 통폐합 조치에 따라서 충청남도 지역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다. 평택군은 경기도로 소속이 이전되었고, 36개 군은 23개 군으로 줄었다. 홍성군, 대전군, 논산군이 형성되었고 중심지가 바뀌었다. 서천 지역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서천군은 행정 구역 개편 직전에 11개면, 158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군청 소재지는 개곡면 동변리였다. 한산군은 9개면, 142개 동리로 군청 소재지는 북부면 내상리였다. 비인군은 6개면, 142개 동리로 군청 소재지는 군내면 성내리였다. 그런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조치에 따라서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 지역은 모두 서천군으로 통합되었다. 통합된 서천군은 13개면, 167개 동리로 구성되었고, 군청 소재지는 남양면 군사리였다. 남양면은 1917년 서천면으로 개칭되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행정 구역 통폐합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조선총독부가 처음에 마련한 방안은 서천군과 한산군, 비인군, 임천군을 통합하는 안이었다. 이러한 안을 두고 조선총독부는 충청남도에 확인 조정을 하였다. 충청남도에서는 임천군과 홍산군, 부여군을 묶어서 부여군으로,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을 통합하여 서천군으로 하는 통합안을 조선총독부에 제시하였다. 결국 조선총독부는 충청남도에서 제출한 안을 채택하였다. 그 이유는 임천군은 부여군과 가깝기 때문이며, 서천군에 통합되면 시정상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서천군에 포함되는 지역으로는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의 전부 및 오천군 하남면의 개야도, 죽도, 연도가 있었다. 3개 섬이 편입된 이유는 현재 비인군 및 서천군의 바닷가와 가깝고 오히려 소속 오천군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군청 소재지는 현재의 서천군 소재지와 같은 장소로 하는데 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교통상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합병된 3개군 중에서 서천군이 가장 크기가 커서 군명으로 채택되었다. 면의 통폐합 상황을 보면 서천군은 11개의 면을 5개의 면으로 정리하였다. 서천군의 서남면, 시초면, 남양면, 문산면, 마동면으로 통폐합하였다. 대체로 통합되는 면의 한 글자씩을 따서 면의 명칭으로 정하였다. 비인군은 6개의 면을 4개의 면으로 정리하였다. 비인면, 종천면, 서면, 동면이었다. 마지막으로 한산군은 9개의 면을 4개의 면으로 통폐합하였다. 한산면, 화양면, 기산면, 마산면으로 정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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