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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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舒南公立普通學校 同盟 休學 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서남공립보통학교에서 일본인 교사의 횡포에 맞서 동맹 휴학한 사건.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 동맹 휴학은 학생들의 인권 의식, 권리 의식, 민족의식이 표출된 결과였다. 특히 공립학교 교사들의 억압과 차별은 한층 더 폭력적이어서 학생들의 저항도 강하게 표출되었다. 또한 동맹 휴학은 초등 학교와 중등 학교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일본인 교사들이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로 인하여 배척받는 경우가 많았다.
[경과]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서남공립보통학교에서는 1927년 일본인 교장도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일본인 교장은 부실한 수업 내용으로 학생들의 시간을 허비하는 등 무성의한 수업 태도를 보였다. 학생들은 1927년 2월 21일부터 이틀간 동맹 휴학이라는 방식으로 저항하였다. 학생들은 “이런 선생에게는 더 배울 바가 없다.”라고 선언하였으며, 학부모들 역시 ‘금쪽같은 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학교장’을 불신임하여 학교 측에 교장의 다른 비위 사실을 제기하고 항의하였다.
1933년 10월 서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또다시 동맹 휴학이라는 방식으로 일본인 교사의 횡포에 맞서 저항하였다. 1927년 동맹 휴학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차별, 교사의 소양 부족 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동맹 휴학의 직접적인 원인은 과도한 노동 강요와 학생에 대한 일본인 교사의 구타였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수업 외 모내기, 짚신 삼기, 가마니 치기, 퇴비 만들기, 논의 김매기, 거름 주기, 돌 나르기, 벼 이삭 줍기 등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였다. 또한, 5학년 담임은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집단 구타하였다. 당시 서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5학년 학생은 일본인 교사의 구타와 과도한 노동 강요에 저항하여 등교를 거부하였고, 학부모도 동조하였다.
[결과]
서남공립보통학교 동맹 휴학 사건(舒南公立普通學校 同盟 休學 事件) 은 두 번째 동맹 휴학 후 학교 측의 사과로 사태가 진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서남공립보통학교에서 자행된 폭압적인 조치들은 일제 교육의 부당성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학생과 학부모는 굴하지 않고 동맹 휴학이라는 방식으로 저항하였으며 끝내 학교 측의 사과를 받았다. 일제 공립학교 체제의 억압과 차별에 항거하여 성공한 사례로 서천 주민들의 강한 저항 의식을 보여 주었다는 면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