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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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유승광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의 전통주 한산소곡주에 대한 이야기.
[술 익는 냄새가 그득한 한산]
서천군 한산면은 서천군의 동쪽에 위치한다. 서천군은 1914년 이전에는 한산군, 서천군, 비인군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한산군, 서천군, 비인군 3개 군을 합쳐 서천군으로 명명하였다. 1914년 이전 한산 지역에는 한산군의 관아가 있었고 한산군을 중심으로 9개 면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옛 한산군 지역을 중심으로 빚어 온 전통주를 한산소곡주라고 한다.
한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술을 빚어 왔다. 민족의 명절인 설이나 추석에는 집집마다 빚은 술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집에서 빚는 전통주 제조를 금지하여 전통주의 맥이 끊어지기 시작하였지만 한산소곡주는 음지에서 밀주 형태로 명맥을 이어 와 명맥이 끊기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밀주 단속 시절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집에서 술을 빚는 사람 손을 들어 봐요.”라고 하면 순진하게 90%가 손을 들었다고 할 정도이다. 한산면에서는 아직까지도 약 1,500여 가구 중에서 250여 가구가 한산소곡주를 빚고 있고 한산소곡주 양조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한산은 술 익는 냄새로 늘 그득하다.
[한산소곡주의 유래]
한산소곡주 는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유민들이 백제 부흥 운동의 근거지였던 한산 건지산 주류산성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기 위하여 하얀 소복을 입고 빚어 마셨다고 하여 흴 소(素)에 누룩 국(穀) 자를 써서 소곡주(素麯酒)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또 다른 설로는 다른 술보다 누룩을 적게 쓴다고 하여 적을 소(少), 누룩 국(麯) 자를 써서 소곡주(少麯酒)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한산소곡주 는 앉은뱅이술이라고 부른다. 앉은뱅이술에 대한 유래는 몇 가지가 전한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을 지나다 주막에서 소곡주를 마시게 되었은데 달짝지근한 맛과 향이 좋아 홀짝거리다가 취한 나머지 앉은뱅이처럼 일어나지 못하여 과거 시험을 놓쳤다고 한다. 또 하나는 한산 지방으로 시집온 며느리가 술이 잘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술맛을 보다가, 달콤한 술에 취하여 앉은뱅이처럼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한산소곡주 의 전통에 대해서는 한산면 단상리 사람들이 빚어 마셨다는 단상리설과 기산면 영모리 사람들이 빚어 마셨다는 영모리설이 있다. 단상리설은 단상리 사람들은 소곡주를 빚을 때 단상리 절굴 샘물을 사용하여 빚었는데 맛이 유난히 좋아 오랜 세월 동안 단상리 절굴 샘물을 사용하여 옛날 방식 그대로 술을 빚어 왔다는 것이다. 현재도 한산면 단상리에는 한산소곡주 양조장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다.
영모리설은 백제 유민들이 빚어 마셨다는 소곡주가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제사에 제주로 한산소곡주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색의 기일에 제주로 사용할 술을 찾던 한산 이씨 문중에서 한산 지방에서 빚은 술 중 가장 좋은 술을 찾아 제주로 사용하자 서로 좋은 술을 만들어 자기 집 술이 제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경쟁하여 지금까지 한산소곡주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영모리 주민들은 이색의 묘가 있는 영모리 기린천 물을 사용하여 술을 빚던 사람들이 단상리로 이사 가서 술을 빚기 시작하면서 단상리에서 좋은 술이 많이 나와 단상리설이 나왔다고 주장한다.
[한산 소곡주의 비법]
한산소곡주 는 옛 한산 지역인 지금의 서천군 한산·화양·기산·마산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2024년 현재 70여 가구가 양조장 시설을 갖추고 주류 제조 면허를 취득하여 생산하고 있다. 기본적인 제조법은 같지만 양조장마다 대를 이어 내려온 비법과 첨가하는 재료가 달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한산소곡주는 100일 동안 숙성시키기 때문에 한산소곡주를 100일주라고도 한다. 한산소곡주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누룩만들기: 밀을 물에 담갔다가 잘게 부수어 틀에 부은 뒤 메주 모양의 누룩을 만들어 한 달 정도 배양하여 그늘에 보관한다.
② 밑술 빚기: 멥쌀 가루를 시루에 넣고 흰무리떡을 찐다. 흰무리떡에 누룩 물을 부어 만든 곡자 물을 4~5일간 발효시키면 밑술이 완성된다.
③ 덧술 만들기: 찹쌀로 고두밥을 쪄서 숙성된 밑술과 혼합하여 덧술을 만든다. 이때 말린 들국화, 메주콩, 엿기름, 생강 등 향과 맛을 내는 첨가물을 넣는다.
④ 숙성하기: 첨가물을 넣은 덧술을 항아리에 담고 저온에서 100일 동안 숙성시킨다.
⑤ 술 뜨기: 술이 숙성되면 길쭉한 바구니 모양의 용수를 항아리에 박아 3~4일 기다린 뒤 바가지로 맑은 술을 떠 낸다. 떠낸 맑은 술이 완성된 한산소곡주이다.
[한산소곡주의 매력]
한산소곡주 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한산소곡주의 매력 중 첫번째는 150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주라는 데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 술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다루왕 11년(318년) 가을에 곡식이 잘 되지 못하여 백성이 사사로이 술 담그는 것을 금하였다.”, “의자왕 16년(656년) 11월, 왕이 궁인과 더불어 음란과 향락에 빠져 슬 마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무왕 37년(635년) 3월 왕이 좌우 신료들을 거느리고 백마강 고란사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즐거움이 극에 이르러 북과 거문고를 타며 스스로 노래를 불렀다.”
한산 지역 사람들은 『삼국사기』에 전하는 술에 관한 기록들을 들어 백제 시대 왕들이 마신 술이 소곡주라고 믿고 있다. 사실 백제 사람들은 누룩을 이용한 양조 기술이 뛰어난 나라였다. 일본의 고문서에도 백제인이 일본에 건너와 누룩으로 술을 빚는 기술을 전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두 번째는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오면서 가양주로서 명맥을 이어 와 한산면의 지역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양주는 조선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는 조상 숭배와 세시풍속을 중요시하는 유교 사상과 농경 문화가 발달하면서 특히 가양주 문화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자가 면허제가 폐지되어 일반 가정에서 술을 빚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고 술 제조에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면서 가양주의 맥이 대부분 끊겼다.
해방 후에도 쌀이 귀하여 수시로 금주령이 내려져 한산소곡주는 밀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한산소곡주는 오랜 기간 동안 사실상 밀주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그후 1970년대 중반부터 쌀로 술을 빚는 것이 허용되면서 1979년 한산소곡주가 충청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한산면 호암리의 김영신이 한산소곡주 기능 보유자가 되면서 공식적으로 맥을 잇게 되었다.
세 번째는 70여 곳의 양조장마다, 그리고 각 가정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쌀과 누룩의 배합량 등 집안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비법과 첨가물이 각각 달라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각각 다른 맛이 한산소곡주의 특징이자 톡특한 매력이다. 거기다 한산면 주민 대부분이 소곡주를 빚을 줄 안다는 것이다. 한 고을 사람들이 특정한 술의 제조법을 두루 알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최근 한산소곡주는 과학적인 방법과 과학적인 시스템을 통하여 관리 생산되고 있어 예전보다 위생적이고 안정적인 소곡주가 생산된다. 그러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손맛과 정성이야말로 한산소곡주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한산소곡주에 대한 일화]
예로부터 제사나 혼인 등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었다. 각 가정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술을 빚어 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한산 지역 부녀들 역시 집안 대소사에 사용하기 위하여 소곡주를 빚어 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부터 가정에서 술을 빚는 금지하였고 해방 후 군사 독재 시절에도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여 전통주 대부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한산 지역 주민들은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몰래 술을 빚어 집집마다 소곡주 항아리가 있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마을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려도 소곡주 한 항아리쯤은 있어 소곡주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밀주 단속이 심하던 시절에는 집에서 술을 빚어 파는 것을 막기 위하여 단속을 자주 나왔다. 그때마다 한산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단속반이 오면 소곡주를 숨겨 둔 벽장문을 열면서 담대하게 어디 있나 찾아보라고 소리쳐 단속을 피하였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나무를 보관하는 창고에 술독을 파묻어 단속을 피하였다고 한다. 술독과 술병을 묻고 나무를 쌓아 놓은 것처럼 꾸며 단속을 피한 이야기들이 무용담처럼 전하고 있다.
[한산소곡주의 미래]
2009년 한산면 지현리를 비롯한 15개 리가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에 의하여 국내 전통주로는 첫번째로 ‘서천한산소곡주산업특구’로 지정되었다. 서천군은 서천한산소곡주산업특구 지정 이후 한산소곡주 제조법 표준화를 비롯하여 한산소곡주의 고급화와 전통주 복원을 위하여 제조 장벽을 낮추고, 품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하여 특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한산소곡주 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 가운데 하나이다. 한산소곡주는 오랜 세월 가양주 형태로 집집마다 내려오는 전통에 따라 술을 빚었다. 현재도 한산소곡주는 한산을 포함한 서천군 전역의 250여 농가가 집집마다 고유의 제조 방법으로 빚고 있다. 그중 90%가 한산면에 집중되어 있어 상당히 높은 지역성을 갖고 있다. 한산소곡주는 백제 시대부터 전해져 왔다는 역사성 외에도 한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술을 빚어 명맥 유지에 어려움이 없으므로 국가무형유산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