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이씨 선현이 배향된 곳, 문헌서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012
이칭/별칭 효장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영모리 1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경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문헌서원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영모리 10]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에 있는 문헌서원에 대한 이야기.

[개설]

문헌서원(文獻書院)은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영모리 10]에 있는 서원이다. 1594년 ‘효정사(孝靖祠)’라는 사당으로 건립되었으며, 1611년 ‘문헌(文獻)’이라는 이름을 사액받으면서 서원으로 확장되었다. 문헌서원에는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과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을 비롯하여 이종덕(李種德)[1351~1388], 이종학(李種學)[1361~1392], 이종선(李種善)[1368~1438], 이맹균(李孟畇)[1371~1440], 이개(李塏)[1417~1456], 이자(李耔)[1480~1533] 등 총 여덟 명의 한산 이씨 인물이 배향되어 있다.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

이곡이색은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였다. 특히 이색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으로 불렸다. 이곡은 고려 후기 한산군(韓山郡) 향리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한 후 원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원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하였다. 고려 후기 급진 개화파로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던 정도전(鄭道傳)이곡을 이제현(李齊賢)의 후계자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곡은 당대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는데, 고려 후기 원나라에 동녀(童女)를 바치는 폐단을 지적하며 중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곡의 아들 이색 또한 고려와 원나라 양국에서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색은 아버지 이곡과 함께 국내외적으로 성리학적 수준을 인정받으며 여러 요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특히 이색은 고려 후기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는데, 공민왕에게 시정 개혁 8조문을 상소하여 토지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또한, 제자들을 양성하여 성리학 발전에 힘썼는데, 제자로는 정몽주·박상충(朴尙衷)·박의중(朴宜中)·이숭인(李崇仁)·권근(權近) 등이 있었다. 고려 후기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 모두 이색의 제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색은 당시 다수의 저명한 학자와 관료들을 양성하였다.

고려 후기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성리학 발전에 힘썼던 이색은 조선이 건국된 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1396년 이색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이색의 셋째 아들 이종선이 고향인 충청도 한산(韓山)[현 충청남도 서천군] 지역에 이색의 묘를 조성하였고, 이색이곡의 제사를 위하여 효정사를 세웠다.

[문헌서원의 설립과 변천]

문헌서원이 처음 건립되었을 때는 사당의 성격이었다. 1594년 한산 이씨 가계에서 이곡이색에 대한 제향을 목적으로 효정사를 세웠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효정사를 재건하면서 강당을 만들고 1611년 조선 조정으로부터 ‘문헌’이라는 이름을 사액받으면서 문헌서원으로 바뀌었다. 당시 조선은 성리학의 발달과 붕당 정치의 전개로 인하여 전국 각지에서 서원이 활발하게 건립되고 있던 시기였다. 지방의 사족들은 서원을 매개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였고, 강학 활동을 통하여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한편 선현(先賢)에 대한 제사를 주관함으로써 학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문헌서원 역시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설립되었는데, 충청도관찰사 정엽(鄭曄)과 정언 이경탁(李慶倬) 등의 주도로 건립될 수 있었다.

문헌서원이곡이색 부자를 주벽(主壁)으로 두고 한산 이씨 위패를 여러 차례 추향하였는데, 가장 먼저 1611년 이종학이자를 추향하였다. 이종학이색의 둘째 아들로 온건 개혁파의 일원이었는데, 정몽주 사후 급진 개화파에게 살해되었다. 이자는 중종 대에 조광조와 함께 개혁 정치를 추구하다가 기묘사화 때 파직되었다. 1713년 이개의 신위가 추향되고 1969년에는 이종덕의 신위가 추향되었는데, 이개는 이색의 증손자로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다가 살해된 사육신(死六臣) 중 한 명이며, 이종덕이색의 장남으로 고려 말 밀직사의 직임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2013년 문헌서원 개수 및 보수 작업 후 이색의 셋째 아들 이종선이종덕의 아들 이맹균이 추향되어 2024년 현재 총 여덟 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한편, 문헌서원은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19세기 후반에 훼철 위기를 맞이하였다. 19세기 후반 고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였는데, 이때 흥선대원군은 의정부와 삼군부를 복설, 당백전 발행, 호포제 실시 등 강력한 정치적·사회적·군사적 개혁을 단행하였다. 전국에 산재한 서원들도 개혁의 대상으로 지정하였는데, 서원이 붕당 정치의 근원임을 지적하며 일부의 서원과 사우를 제외하고 모두 훼철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1868년과 1871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서원과 사우 철폐령은 전국적으로 많은 서원을 훼철시켰는데, 문헌서원도 이때 철폐되었다. 그러나 1891년부터 옛터의 단에서 제향을 하기 시작하였고, 1967년 무렵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한산 이씨 문중의 노력으로 1969년에 중건되었다.

문헌서원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문헌서원 소장 유물]

문헌서원에서 소장 중인 대표 유물로는 가정목은선생문집판(稼亭牧隱先生文集板)[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이색 초상 - 목은영당본[보물], 이색신도비[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있으며, 문헌서원 옆에 있는 이색선생묘일원(李穡先生墓一圓)[충청남도 기념물]도 문헌서원과 함께 이색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지이다. 이 외에도 인재유고책판(麟齋遺稿冊版),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 책판(舒川 韓山李氏 癸未譜 冊板)[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서천 한산이씨 경신보 책판(舒川 韓山李氏 庚申譜 冊板)[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등이 소장되어 있다.

가정목은선생문집판 이곡의 시문집인 『가정집(稼亭集)』과 이색의 시문집인 『목은집(牧隱集)』을 간행하기 위하여 제작된 책판이다. 문헌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가정집』은 총 143판으로, 대부분 1662년 간행되었다. 간행된 책의 구성은 목록과 연보가 권두에 있고 본문은 20권이다. 『목은집』은 총 774판으로 1626년 간행된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는 1904년 중수되었다. 『목은집』은 목록 3권, 『목은시고(牧隱詩藁)』 35권, 『목은문고(牧隱文藁)』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목은선생문집판은 1978년 3월 3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이색 초상 - 목은영당본은 이색의 초상화이다. 1404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헌서원본은 목은영당본과 동일한 형식으로 1755년 새로 옮겨 그린 것이다. 이색 초상 - 목은영당본은 1995년 3월 10일 보물 제121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이색신도비이색을 기리기 위하여 설치한 비석으로 1405년 하륜(河崙)이 작성한 내용을 이색의 손자 이맹균이 비석에 새겨 1433년 건립하였다. 그런데 1666년 개수하면서 비문의 내용을 송시열(宋時烈)이 다시 작성하였고, 이수경(李壽慶)의 서(書), 김수항(金壽恒)의 전(篆)으로 신도비가 재건되었다. 1904년에는 이색의 후손 이용직(李容稙)과 이호직(李鎬稙)이 신도비를 다시 개수하였는데, 송병선(宋秉璿)이 비명을 짓고, 이용원(李容元)이 서문을 작성하였다. 이색신도비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이색선생묘일원이색의 묘역으로 문헌서원 옆에 있다. 이색이 죽은 후 이색의 셋째 아들 이종선이 기린봉 서쪽 능선에 이색을 매장하였는데, 이색의 묘는 기린이 내려와 풀을 뜯어 먹는 기린하전(麒麟下田)으로, 승려 무학(無學)이 정하여 준 명당이었다. 이후 이색의 묘 바로 아래에 이종선의 묘가 조성되었다. 이색선생묘일원은 1993년 11월 1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인재유고책판은 이곡의 손자이자 이색의 둘째 아들 이종학의 문집에 대한 책판이다. 인재유고책판은 문헌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1650년 제작되었으며, 총 30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 책판 은 1643년 강원도관찰사 이덕수(李德洙)의 주도로 만들어진 한산 이씨 족보 책판이며, 총 64판이 현존하고 있다. 본래는 66판이었는데 2판이 결판되었다.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 책판은 2019년 1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서천 한산이씨 경신보 책판 은 1740년 상주목사 이수보(李秀輔)의 주도로 기존의 한산 이씨 계미보를 증보한 책판인데, 총 437판이 현존하고 있다. 본래는 454판이었는데 17판이 결판되었다. 서천 한산이씨 경신보 책판은 2019년 1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문헌서원의 의미]

문헌서원이곡이색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된 후 한산 이씨 문중을 위한 공간에서 나아가 향촌 사회의 교육 기관으로 발돋움하였다. 조선 후기 서원의 위상이 향촌 사회의 향중 공론을 형성하며 성리학적 지식을 보유한 사족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의 의미를 가졌던 만큼, 문헌서원은 조선 시대 서천 지역의 사족들을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헌서원에 배향된 이곡이색을 비롯한 한산 이씨 문중 인물들은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을 뿐 아니라 유교적 가치관이었던 효(孝)와 충(忠)을 실현하였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헌서원의 위상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어서 최근에도 한산 이씨 가계의 구성원이 문헌서원에 추향되기도 하였다. 문헌서원한산 이씨 선현이 배향된 곳이며,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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