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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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穡神道碑 |
이칭/별칭 | 목은이색신도비,목은신도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영모리 1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경동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328년 6월 17일 - 이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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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396년 6월 17일 - 이색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433년![]()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666년 - 이색신도비 개수 및 재건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04년 - 이색신도비 개수 및 재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색신도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이색신도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
현 소재지 | 이색신도비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영모리 10]![]()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이색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328㎝[전체 높이]|220㎝[비석 높이]|118㎝[비석 너비]|34㎝[비석 두께] |
소유자 | 한산 이씨 종중 |
관리자 | 한산 이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에 있는 목은 이색의 공덕을 기리는 신도비.
[개설]
이색신도비(李穡神道碑)는 고려 후기 성리학자로 유명하였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학문적 업적과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비석이다. 이색은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으로 불렸다. 이색은 1353년(공민왕 2) 과거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1354년에는 원나라의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색은 온건개혁파로 고려의 사회 제도 개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조선 건국 이후에는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후 1396년 사망하였다. 이색의 묘는 기린봉 서쪽 능선에 조성되었고, 묘 옆에는 이색을 배향한 사당인 ‘효정사(孝靖祠)’가 설립되었다. 효정사는 이후 사액을 받아 ‘문헌서원(文獻書院)’이 되었다. 이색신도비는 문헌서원 목은이색영당 삼문 앞에 있다. ‘목은이색신도비’, ‘목은신도비’라고도 부른다.
[건립 경위]
이색신도비는 본래 1405년 하륜(河崙)이 비문을 작성하였으며 이색의 손자 이맹균(李孟畇)이 1433년 건립하였다. 그런데 1666년 신도를 개수하면서 비문의 내용을 송시열(宋時烈)이 다시 작성하였고, 이수경(李壽慶)의 서(書), 김수항(金壽恒)의 전(篆)으로 신도비가 재건되었다. 1904년에는 이색의 후손 이용직(李容稙)과 이호직(李鎬稙)이 신도비를 다시 개수하였는데, 송병선(宋秉璿)이 비명을 짓고, 이용원(李容元)이 서문을 작성하였다.
[위치]
이색신도비는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영모리 10]에 있다.
[형태]
이색신도비는 전체 높이 328㎝이고, 비석 높이는 220㎝, 비석 너비는 118㎝, 비석 두께는 34㎝이다.
[금석문]
이색신도비의 앞면에는 1904년 송병선과 이용원이 작성한 글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1666년 송시열이 작성한 글이 새겨져 있다. 앞면의 비문은 ‘고려문하시중 한산부원군 문정공 목은 이선생 신도비명(高麗門下侍中韓山府院君文靖公牧隱李先生神道碑銘)’으로 시작하며, 이색의 생애와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뒷면의 비문은 이색에 대한 송시열의 평가가 기록되어 있는데, 송시열은 항상 『고려사(高麗史)』를 읽으면서 정도전(鄭道傳)이 이색의 죄를 의논한 것에 탄식한다고 적으며 이색의 학문적 업적과 위상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현황]
이색신도비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의의와 평가]
이색신도비는 문헌서원, 목은 이색 영당, 이색선생묘일원과 함께 고려 후기 이색의 학문적 업적과 지위을 보여 주는 한편 한산 이씨 가계의 위상과 결속력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색이 사망한 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색신도비의 개수 작업은 이색을 기리는 한산 이씨 가계의 노력과 사족들의 관심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