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053
한자 置標
이칭/별칭 가묘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상장례

[정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집안에 고령자가 있을 때에 상사에 대비하여 미리 묫자리를 골라 표시하여 두는 것.

[개설]

예나 지금이나 상사를 당하여 묫자리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갑작스레 상을 당하면 시간이 촉박하여 원하는 자리를 택하기가 어렵다. 특히 주검을 매장할 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난처함을 겪어야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미리 묫자리를 정하여 두는 풍속을 치표(置標)라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치표 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조실록(正祖實錄)』 27권 기사에 ‘치표(置標)’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왕이 묫자리에 대하여 묻자 “영의정 김익 등이 수원의 치표한 곳을 살피고 그 사정을 아뢰었다.”라고 한다. 이러한 기사에는 치표의 대상지로 삼은 묫자리의 풍수관이 잘 나타나 있다. 근래에는 치표 관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매장 문화가 급격하게 쇠퇴하면서 치표 관행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절차]

치표 는 집안에 고령자나 환자가 있을 때에 미리 묫자리를 잡아 두는 것을 말한다. 치표의 대상지는 문중의 선산이나 자신이 보유한 산지이다. 타인의 산지에 양해를 얻어 정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극히 드문 편이다.

치표 는 본인이나 가족이 주도한다. 보통 본인이 고령이 되면 묫자리를 잡는 관행이 전한다. 묫자리를 택할 때에는 양지바르고 전면에 시내나 강이 보이는 자리가 좋다고 한다. 또 산 아래에서 너무 멀지 않은 자리를 선호한다. 차후 자손들이 성묘 오는 것에 대한 고려이다. 치표의 방식도 여러 가지이다. 가장 단순한 방식은 묫자리에 무거운 돌을 놓거나 말뚝을 박아 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후 무덤 자리라고 알린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치표는 누군가에게 빼앗길 우려도 있다. 그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먼저 장지로 삼을 경우 표지만 가지고는 대항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인 방식의 치표가 성행하였다. 실제 무덤처럼 일대를 평토(坪土)하고 한가운데 봉분을 짓는다. 이후 잔디를 심어 묘지 모양을 만들어 놓는다. 사례에 따라서는 봉분 중앙에 광(壙)을 만들고 또 내광(內壙)[관을 안치하는 공간]을 조성한 뒤 2m 남짓한 나무를 넣기도 한다. 이후 흙을 채워 봉분을 짓는 방식으로 무덤을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한 무덤을 망자가 들지 않은 무덤이라고 하여 가묘(假墓)라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서천 지역 농어촌의 경우 동산(洞山)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이 있다. 이런 마을에서는 마을 산을 주민들의 공동묘지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때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동회에서 묘지 사용권을 분양받아 치표하여 놓고 사후 장지로 사용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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