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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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蓄 |
영어공식명칭 | Yi Chuk |
이칭/별칭 | 윤보(閏甫),망월암(望越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전기 서천 출신의 문신.
[가계]
이축(李蓄)[1402~1473]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윤보(閏甫), 호는 망월암(望越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판문하부사 이색(李穡)이고, 할아버지는 밀직사지신사를 지낸 이종학(李種學)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 이숙야(李叔野)이고, 어머니는 한성부윤 봉유인(奉由仁)의 딸 하음 봉씨(河陰 奉氏)이다. 부인은 서선(徐選)의 딸 이천 서씨(利川 徐氏)이고, 아들은 이훈(李塤)이다.
[활동 사항]
이축은 1402년(태종 2) 한산[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 때인 1417년 계성전직에 제수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후 사선시주부와 광주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1434년(세종 16) 전농시소윤을 거쳐 강원도경력을 지냈으며, 1444년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다. 이어 지사간원사·선공감판사·봉상시사 등을 지냈고, 1451년(문종 1)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1452년 이조참의로 재직할 때에는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축은 1452년(단종 즉위년)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는데, 9월에 안평대군이 해주로 사냥을 나왔을 때 군사를 동원하여 도움을 주고 안장 갖춘 말을 선물로 받은 게 문제가 되자 사직하였다. 이축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양에 있던 별서(別墅)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473년(성종 4) 사망하였다.
[묘소]
이축의 묘소는 고양시 덕양구 도내로 81-17[도내동 844-3]에 있다. ‘도내동 은지 및 이축 선생 묘’라는 명칭으로 1999년 2월 1일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