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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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叔畤 |
영어공식명칭 | Yi Sukchi |
이칭/별칭 | 순절(順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전기 서천 출신의 문신.
[가계]
이숙치(李叔畤)[1390~1446]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첨의찬성우문관대제학 이곡(李穀)이고, 할아버지는 판문하부사를 지낸 이색(李穡)이다. 아버지는 밀직사지신사 이종학(李種學)이고, 어머니는 이춘부(李春富)의 딸 양성 이씨(陽城 李氏)이다. 부인은 의정부찬성사 안순(安純)의 딸 순흥 안씨(純興 安氏)이다. 형은 이숙야(李叔野)·이숙휴(李叔畦)·이숙당(李叔當)·이숙묘(李叔畝)·이숙복(李叔福)이다.
[활동 사항]
이숙치는 1390년(공양왕 2) 한산[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1405년(태종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을 거쳐 1421년(세종 3) 경기도경력을 지냈고, 한성부소윤으로 있던 1422년에 전국적으로 기근이 들자 전라도경차관으로 파견되어 실상을 조사하였다. 이후 사헌부장령과 전농시윤을 거쳐 1427년 수원부사로 부임하였다.
이숙치는 1430년 형조참의·병조참의·공조참의를 역임하였고, 1431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공조좌참의·병조좌참의·형조우참의 등을 거쳐 1433년 평안도도관찰사 겸 평양부윤으로 나아가서는 소란을 일으키는 파저강 야인을 생포하기도 하였다. 1434년 형조참판을 지낸 뒤 사헌부대사헌으로 재직할 때에는 불교 사찰이 소유한 토지를 국용에 충당할 것과 장리(贓吏)와 음녀(淫女) 자손의 관직 서용 제한 등을 제안하였다.
1437년 함길도도관찰사로 부임한 이숙치는 도절제사 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변방에 4진(鎭)의 설치와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였고, 1440년 의정부우참찬에 제수되어서는 평안도도체찰사를 겸하며 변방 지역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였다. 이숙치는 1443년 성절사로 북경에 다녀온 뒤 1445년에는 좌참찬에 승진하여 판호조사를 겸하였고, 1446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