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20
한자 金印斗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안당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11월 25일연표보기 - 김인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9일 - 김인두 마산면 장터 시위 선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9일 - 김인두 「보안법」 위반으로 3년 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46년 7월 12일연표보기 - 김인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인두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김인두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안당리지도보기
활동지 신장리 장터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인두(金印斗)[1897~1946]는 1897년 11월 25일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안당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김인두서천군 마산면에서 송기면, 유성렬 등의 주도하에 만세 시위를 계획하면서 태극기 200장을 만들었다. 1919년 3월 29일 신장리 장터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태극기를 배포하며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수백 명의 군중이 동참하였다.

만세 시위 소식을 접한 순사보 이한규 등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고 송기면, 유성렬, 송여직 등을 연행하였다. 뒤를 이어 이근호나상준이 시위대를 지휘하다 경찰에 끌려갔다. 이에 김인두고시상·양재흥·박재엽 등과 함께 격분한 2,000여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몰려가 연행에 항의하며 석방을 요구하였다. 시위 군중은 주재소를 향하여 돌을 던지고 안으로 쳐들어가 경찰을 구타하는 한편, 창문과 책상, 의자 등 시설과 집기류를 파괴하였다. 결국 주재소를 파괴하고 연행자들을 모두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더욱 기세가 고양된 시위대를 이끌고 한산면을 거쳐 서천면 방향으로 행진하다가 중도에 해산하였다.

김인두는 일제 경찰에 피체된 뒤 1919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6년 7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인두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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