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27
한자 羅相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외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 8월 28일연표보기 - 나상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9일 - 나상준 마산면 신장리 만세 시위 선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9일 - 나상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0년 5월 27일연표보기 - 나상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나상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나상준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지도보기
활동지 신장리 장터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나상준(羅相俊)[1905~1950]은 1905년 8월 28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서울에서 시작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자, 서천에서는 송기면을 비롯하여 이근호·유성렬 등이 마산면 신장리 장날을 기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신장리 장터에서 송기면 등의 주도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시위 탄압을 위하여 마산면 순사주재소의 일제 경찰대가 즉시 출동하였다. 경찰대는 선두에서 시위대를 지휘하던 송기면 등 다수를 연행하였다. 송기면의 뒤를 이어 시위대를 지휘하던 이근호나상준도 곧이어 연행되었다.

나상준은 1919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선고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어 1919년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연이어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50년 5월 27일 사망하였다.

[묘소]

나상준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나상준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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