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35
한자 三·一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연표보기 - 3·1운동 발생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3월 4일 - 조남명 독립선언서 접함
전개 시기/일시 1919년 3월 8일 -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 독립 만세 운동 발발
전개 시기/일시 1919년 3월 29일 -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독립 만세 운동 발발
전개 시기/일시 1919년 3월 30일 - 서천군 종천면 화산리 독립 만세 운동 발발
발생|시작 장소 독립 만세 운동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지도보기
종결 장소 독립 만세 운동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화산리지도보기
성격 만세 운동
관련 인물/단체 송기면|유성열|이근호|임학규|송여직|나상준|고시상|양재흥|박재엽|정일창|김인두|이승달|조남명|문태근|한영학교|금당교회

[정의]

1919년 3월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일제에 맞서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하여 거족적인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서는 개항 이후 한영학교 등 근대적인 교육 기관들이 설립되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기독교계도 근대 교육과 의식을 전파하여 이후 전개될 만세 운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한편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민 이주와 일본인 토지 소유 증가, 전통 시장 붕괴, 지방 금융 기관 설립 등 일제의 경제 침탈은 서천 주민들의 항일 정신과 반일 감정을 고조시켰다.

[경과]

1919년 3월 1일 서울 및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독립선언서가 지방으로 배부되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서는 서천읍 삼산리 시장에서 금당교회 집사이며 화양면 금당리 출신인 조남명(趙南明)이 주도한 만세 운동을 필두로 서천 내 각 지역으로 만세 운동이 확대되었다. 조남명은 3월 4일 유재경에게 독립선언서를 빌려 보고 이근호(李根浩), 한백희(韓伯熙), 최경진(崔敬鎭) 등에게 만세 운동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일본 경찰에 움직임이 노출되어 3월 8일 조남명이 체포되었으나 조남명 일행은 서천면 삼산리 시장에서 군중을 향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서천 지역의 대표적인 3·1운동마산면 신장리에서 일어났다. 기독교도인 송기면(宋箕勉), 유성열(劉性烈), 이근호, 임학규(林學圭), 이동홍(李東洪) 등이 모의하여 장날인 3월 29일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고 2,000여 명의 군중이 호응하여 행진하였다. 행진 과정에서 일본 경찰이 송기면, 유성열, 이근호, 나상준(羅相俊) 등을 체포하였다. 군중들은 반발하여 경찰관 출장소를 공격하였고 송기면 등 구금된 인사 6명은 출장소를 탈출할 수 있었다. 군중이 한산읍을 경유하여 서천읍을 향하자 군수 권익채(權益采)가 “일제 헌병이 매복하여 있으니 해산하여 달라.”라고 권고하였다. 군중들은 군수에게 격렬히 항의하였지만 일단 해산하였다. 3월 30일에는 종천면 화산리에서 2,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문태근(文泰根) 등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결과]

일제는 서천경찰서 순사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홍성군에 주둔한 헌병까지 동원하여 서천 지역의 3·1운동을 탄압하였다. 주동자들을 체포하였으며 갖은 고문 후 재판에 넘겼다. 만세 운동을 준비한 조남명은 태형 90대를 선고 받았다. 마산 신장 만세 운동 주도자들인 송기면은 징역 1년 6월, 유성열·이근호·임학규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마지막 재판에서는 송여직(宋汝直) 1년 6월, 나상준 징역 1년, 고시상(高時相) 징역 3년 6월, 이동홍 징역 3년, 양재흥(梁在興) 징역 3년, 박재엽(朴在燁) 징역 3년, 정일창(鄭日彰) 징역 3년, 김인두(金印斗) 징역 3년, 이승달(李承達) 징역 3년 등을 선고 받았다. 마지막 재판을 받은 사람들의 형량이 무거웠던 이유는 경찰관 출장소를 파괴하고 구금된 사람들을 구출하였기 때문이었다.

[의의와 평가]

서천 지역의 3·1운동은 일제 탄압에 대한 거족적인 저항 의지를 표출한 대규모 만세 운동이었다. 개항 이후 서천 지역에서 축적된 민족적인 역량이 기반이 되었으며 주민들이 경찰과 헌병에게 정면으로 맞섰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천 지역 3·1운동으로 서훈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 애족장에 1990년 송기면, 유성열, 이근호, 임학규, 송여직, 고시상, 양재흥, 박재엽, 정일창, 이승달 등이 서훈되었다. 1992년에는 나상준이 서훈되었다. 대통령 표창에는 1993년 조남명이 서훈되고, 2013년 문태근이 서훈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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