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벽당칠수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308
한자 林碧堂七首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92년 - 김임벽당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49년 - 김임벽당 사망
배경 지역 남당리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지도보기
성격 고도서
작가 김임벽당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출신인 김임벽당의 한시를 엮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문집.

[개설]

『임벽당칠수고(林碧堂七首稿)』김임벽당(金林碧堂)[1492~1549]의 7세손 유세기(兪世基)[1653~1711]가 김임벽당의 시를 조선 후기 유명한 문사들인 남구만(南九萬)[1629~1711]·조지겸(趙持謙)[1639~1685]·윤증(尹拯)[1629~1714]·조인수(趙仁壽)[?~1692]·한태동(韓泰東)[1646~1687]·남용익(南龍翼)[1628~1692] 등의 서문과 발문을 받아 엮은 시집이다.

[구성]

『임벽당칠수고』에는 김임벽당이 베개에 수놓았던 시 2수, 허균(許筠)[1569~1618]이 편찬한 『국조시산(國朝詩刪)』에 수록된 시 2수, 중국 명대의 시선집인 『열조시집(列朝詩集)』에 수록된 시 3수, 그리고 당대에 유명한 문인들의 서문과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내용]

『임벽당칠수고』의 대표 작품은 「제임벽당(題林碧堂)[임벽당에 제하여]」 2수이다. 김임벽당이 베갯모에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필체로 직접 수를 놓은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벽당에 제하여 1」

작은 마을 그윽이 깊은 한구석/ 자연 몹시 사랑하니 근심 잊을 만하네./ 인간사 옳고 그름 얽매이지 아니하고/ 꽃 피면 봄, 잎 지면 가을인 줄 안다지.

「임벽당에 제하여 2」

숲속에 의지하여 속세의 번뇌 끊고/ 다만 그윽이 참 성품 기른다네./ 한가로운 베갯머리 봄날의 졸음/ 한없는 그 모습 태초의 백성 같구나.

남구만은 「제임벽당」에 대하여 “암송하면 성률이 화평하고, 음미하면 흥취가 그윽하고 한가로워 『시경(詩經)』「이남(二南)」의 유풍을 계승하였다. 세속을 벗어난 아취와 자득의 즐거움, 가난하나 검약하여 화려함을 그리워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도연명(陶淵明)[365~427]과 임포(林逋)[967~1028]의 작품들과 견줄 만하다고 극찬하였다.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속세에 초연하여 담담한 모습으로 삶을 관조하듯 살아가는 김임벽당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져 있다. 「증별종손(贈別從孫)[종손과 작별하며]」은 깊은 산골 마을에 사는 집안에 손님이 왔으나 가난하여서 술이 없어 돌려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그리고 있다.

[특징]

김임벽당은 ‘임벽(林碧)’으로 자신의 호를 삼았다. 자연에 귀의하여 욕심 없이 살겠노라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김임벽당이 베갯모에 자신의 필체로 직접 수를 놓은 「제임벽당」 2수는 지금은 유실되었으나, 7세 후손까지 내려오는 동안 상자 속에 오롯하게 보관되어 오고 있었다고 한다. 500여 년 전 조선의 한 여성이 시를 창작하고,시를 베개에 수를 놓으며 문학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당시 예술 수준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김임벽당은 조선 전기의 3대 여성 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 시대의 문학 평론가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조선 전기의 3대 여성 시인에 정씨, 성씨, 김씨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시를 소개하였다. 『패관잡기』에서 말한 김씨가 바로 김임벽당이다. 어숙권의 언급 이후에도 김임벽당의 한시는 우리나라 역대 한시 평론사에서 자주 회자되었다. 『임벽당칠수고』의 편찬 동기는 중국인 전겸익(錢謙益)[1582~1664]이 엮은 『열조시집』에 임벽당의 한시 작품 3수 「증별(贈別)」, 「빈녀음(貧女吟)」, 「고객사(賈客詞)」가 실려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김임벽당은 시, 글씨, 자수의 삼절(三絕)로 이름을 떨쳤는데, 시명(詩名)을 중국까지 드날렸던 것이다. 『임벽당칠수고』는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문인 시집이 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