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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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澈 |
영어공식명칭 | Shin Cueol |
이칭/별칭 | 사척(士滌),지족재(知足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5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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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출생지 | 율리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율리![]() |
거주|이주지 | 율리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율리 |
묘소|단소 | 신철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율리 |
사당|배향지 | 율리사(栗里祠)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검로287번길 18[율리 193]![]()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평산 |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학자.
[가계]
신철(申澈)[1588~1637]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사척(士滌), 호는 지족재(知足齋)이다. 할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지낸 신준경(申俊卿)이고, 아버지는 신여공(申汝恭)이다. 어머니는 현감 김덕준(金德俊)의 딸이다.
[활동 사항]
신철은 1588년(선조 21)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율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인정이 많았으며, 커서는 경사(經史)[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아울러 이르는 말]에 발고 지조와 기개가 출중하였다고 한다.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너무 슬퍼한 나머지 몸이 쇠약하게 되어 사경에 이르기도 하여 사람들이 효심을 칭송하고 존경하였다고 한다.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신철은 1637년에 출진하여 적과 싸우다가 전장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신철의 묘소는 서천군 비인면 율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신철은 사망한 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검로287번길 18[율리 193]에 있는 율리사(栗里祠)[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에 배향되었다. 율리사는 평산 신씨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을 주배향자로 하고 신철을 비롯한 평산 신씨 후손 신현(申賢)·신혼(申琿)·신연(申演)·신기(申淇)·신오(申澳)를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