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665
한자 申琿
영어공식명칭 Shin Hon
이칭/별칭 우재(尤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82년 - 신혼 도문동 은거
몰년 시기/일시 1393년연표보기 - 신혼 사망
사당|배향지 율리사(栗里祠)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검로287번길 18[율리 193]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평산
대표 관직|경력 집현전한림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율리에 있는 율리사에 배향된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신혼(申琿)[?~1393[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호는 우재(尤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연(申衍)이고, 할아버지는 좌대언을 지낸 신중명(申仲明)이다. 아버지는 어사대부 신군평(申君平)이고, 부인은 임덕수(任德壽)의 딸 풍천 임씨(豊川 任氏)이다. 아들은 신호(申浩)·신연(申演)·신기(申淇)이다.

[활동 사항]

신혼은 과거에 급제한 후 집현전한림 겸 기거사인을 지냈다. 1392년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하자 관직에서 물러났고, 아들 삼형제를 불러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켜야 한다며 두문동[현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옛 지명]에 들어갈 뜻을 밝혔다고 한다. 아들 삼형제 중 맏아들인 신호는 남아 가문을 건사하게 하고 두 아들과 함께 두문동으로 들어갔다.

조선 조정에서 두문동에 거처하는 고려 유신들을 여러 차례 조정으로 나올 것을 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자 1393년(태조 2) 두문동에 불을 질렀고, 이때 신혼 삼부자를 비롯한 많은 고려의 유신들이 불에 타 사망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신혼은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검로287번길 18[율리 193]에 있는 율리사(栗里祠)[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에 배향되었다. 율리사평산 신씨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을 주배향자로 하고 신혼신연·신기 부자를 비롯한 평산 신씨 후손 신현(申賢)·신철(申澈)·신오(申澳)를 배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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