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군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00
한자 韓山郡守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범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을 관리하던 조선 시대 지방관.

[제정 경위 및 목적]

한산군(韓山郡)은 삼국 시대 백제 마산현(馬山縣)이었으며,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에 들어와서는 가림군(嘉林郡)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가 고려 명종 대에 이르러 감무(監務)를 두어 홍산(鴻山) 지역의 통치를 겸하도록 하였다. 이후 지한주사(知韓州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지금의 명칭인 한산군이 되었다. 한산군의 지방관으로 종4품 군수와 종9품 훈도(訓導) 각 1인이 파견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훈도를 파견하지 않고 군수만 파견하였다. 한산군수(韓山郡守)는 음직(陰職)을 파견하는 지방 관직이었다.

[관련 기록]

조선 전기 한산군수의 파견 기록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서 확인되는 김덕숭(金德崇), 『성종실록(成宗實錄)』에서 확인되는 최치(崔漬), 한철동(韓鐵同), 『중종실록(中宗實錄)』에서 보이는 송연손(宋演孫), 박상(朴祥), 유여림(兪汝霖), 손세옹(孫世雍) 등이 있으며, 『명종실록(明宗實錄)』에는 박순(朴淳)의 이름이 보인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는 다수의 한산군수의 이름이 보인다. 박렴(朴廉), 심예겸(沈禮謙), 이언길(李彦吉), 신경행(辛景行), 나급(羅級), 권황(權滉)이 확인된다. 그 밖에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보감(國朝寶鑑)』,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서천군지』 등의 기록에서 조선 전기 한산군수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한산군수의 파견 기록은 연대기 자료를 통하여 파악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하여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을 통하여 한산군수의 임명과 이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한산군수 는 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역의 행정을 총괄하던 수령이다. 한산군수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규정한 칠사(七事)의 임무를 지켜야 하였다. 농업과 양잠을 융성하게 할 것, 인구를 늘릴 것, 학교를 흥하게 할 것, 군정을 잘 다스릴 것, 부역을 고르게 할 것, 송사를 간략하게 할 것,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을 없앨 것 등이 수령이 하여야 할 주된 의무였다.

[변천]

조선 초기 한산군에는 지한주사가 파견되었으나 이후 1466년(세조 12) 지방 제도 개혁에 따라 지군사(知郡事)를 군수로 고쳤다. 이때 ‘한산군수’라고 이름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한산군수의 임무와 파견 양상을 통하여 당시 서천군의 행정 편제와 지방 통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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