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부곡·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391
한자 鄕部曲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오치훈

[정의]

고려 시대 서천 지역에 있었던 특수 행정 구역.

[개설]

향·부곡·소 는 모두 고려 시대의 특수 지방 행정 구역이며, 이 가운데 향(鄕)·부곡(部曲)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으로 고대부터 존재하였으며, 소(所)는 왕실과 관아 등 국가에 필요한 공물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곳으로 고려 시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악되는 고려 시대의 향·부곡·소는 향이 145개소, 부곡이 431개소, 소가 275개소이며, 그중에 충청도 지역은 향 39개소, 부곡 70개소, 소 60개소가 있다. 서천 지역에는 부곡은 없으며 문조향(文照鄕)임술소(林述所), 웅진명소(熊津溟所)가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 향·부곡·소의 설치 배경에 대하여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7 여주목(驪州牧) 고적 등신장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지금 고찰하여 보건대 신라가 주군(州郡)을 건치(建置)할 때, 그 전정(田丁)과 호구(戶口)가 현이 될 만하지 못한 곳은 혹 향(鄕)을 두거나 혹은 부곡(部曲)을 두어서 소재 읍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시대에 또 소(所)라고 칭하는 것이 있었는데,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사소(絲所) … 어량소(魚梁所)·강소(薑所)의 구별이 있어 각각 그 물건을 공급하였다. 또 처(處)로 칭하는 것이 있었고, 또 장(莊)으로 칭하는 것도 있어서 각각 궁전과 사원 및 내장택(內莊宅)에 나뉘어 소속되어 그 세금을 바쳤다.”

이에 따르면 향과 부곡은 토지나 인구가 적어서 군현이 되지 못한 곳으로 보이는데, 고려 성종 대 지방 관청에 대한 토지 지급 규정에는 향·부곡 가운데에도 일반 군현에 비하여 규모가 큰 곳이 있어 정확한 내용은 아닌 듯하다. 향·부곡·소의 설치 배경은 전쟁 포로의 집단적 수용지 혹은 반역 등 중대한 범죄로 인한 군현의 강등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구하기도 하며, 신라 말 이래의 군현 재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겨진다.

[관련 기록]

고려 시대 서천 지역의 향·부곡·소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천군조에 의하면 군의 동쪽 21리[약 8.25㎞]에 문조향(文照鄕), 군 북쪽 14리[약 5.50㎞]에 임술소(林述所), 군 남쪽 24리[약 9.43㎞]에 웅진명소(熊津溟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술소는 서해안의 포구로 어물과 소금을 생산하였던 곳으로 보이며, 웅진명소금강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무사 항해를 기원한 곳이다.

[내용]

향·부곡·소 향·부곡·소에 소속되어 있는 주민이 일반 군현의 주민에 비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인 차별 대우를 받았다. 종래 이러한 이유로 향·부곡·소의 주민을 신분적인 면에서 집단 천민으로 규정하였으나 근래에는 일반 군현의 주민과 마찬가지로 양인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설이 되었다. 그러한 이유는 무엇보다 향·부곡·소의 주민들 역시 비록 특수한 물품의 생산이나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과(公課), 공역(公役)을 부담하였기 때문이다. 즉 국가에 세금을 바치고 역역을 제공하는 일반 군현의 주민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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