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명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389
한자 熊津溟所
이칭/별칭 제사,소,용당진사(龍堂津祠),상조음거서(上助音居西)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원수리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오치훈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었던 고려 시대 특수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웅진명소(熊津溟所)는 일반적인 소와 달리 제사를 지내는 역할을 담당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관련 기록]

웅진명소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 제사조에 중사(中祀)의 대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서천에 해당하는 서림군(西林郡)에 소재하는 상조음거서(上助音居西)이다.

고려 시대의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조선 시대 편찬한 자료에는 웅진명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서천군조에 “웅진명소, 봄가을에 소재관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용당진사(龍堂津祠)로 불리고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였다.

[내용]

소(所)는 향(鄕)·부곡(部曲) 과 더불어 고려 시대 특수 지방 행정 구역이며, 왕실과 관아 등 국가에 필요한 공물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곳이다. 소는 전국에 275곳, 충청도에 60곳이 있었으며, 서천 지역에는 서천군의 임술소(林述所)웅진명소 2곳이 있었다.

웅진명소는 서천군 치소에서 남쪽으로 24리[약 9.6㎞] 떨어져 있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를 편찬할 당시의 명칭은 웅진명소였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용당진사로 기록되어 있어, 15세기 전반에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웅진명소의 위치는 장항읍 원수리 일대로 추정되는데, 원수리 일대는 금강 하구에 인접하여 조운선과 상선 등이 수시로 드나드는 포구였다. 웅진명소는 신라에서는 상조음거서, 조선에서는 용당진사로 불리며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이런 점으로 보아 웅진명소는 공물 등을 생산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소가 아니라 기도처라는 공간적 의미가 강조된 곳으로 이해된다. 아마도 강과 바다를 오가는 선박들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영험한 공간이었다고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웅진명소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금강 하구에서 제사를 지내고 기도하는 공간으로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는 특수 행정 구역이자 공물 등의 생산 구역인 일반적인 소와는 구분되는 독특한 특징이며, 소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참고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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