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위한 위사답」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253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0년 2월 9일 - 「스승을 위한 위사답」 나주운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5년 12월 8일 - 「스승을 위한 위사답」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관련 지명 고마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고마리
채록지 고마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고마리지도보기
성격 설화|민담
주요 등장 인물 남자
모티프 유형 성실함에 대한 보상|선행에 대한 보은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고마리에서 위사답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스승을 위한 위사답」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고마리에서 스승을 위하여 제자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위사답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스승을 위한 위사답」은 2010년 2월 9일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고마리에서 마을 주민 나주운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고마리에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서당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수업료를 낼 수 없는 형편이라서 마음껏 꿈을 펼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항상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여름이면 농사를 짓고 상대적으로 한가한 겨울이 되면 서당 문 밖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리를 들으며 배움의 꿈을 이어 갔다. 배우다가 모르는 대목이 나오면 서당의 문을 열고 훈장에게 일러 달라 하는데, 어찌나 열정적이었는지 나중에는 훈장이 남자의 책을 담 너머로 집어던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배운 내용을 가지고 한창 일을 하면서도 책을 외었고, 중간의 쉬는 시간에도 책을 외었다고 한다.

한편 남자는 당시 비료가 많이 들어 사람들이 잘 하지 않던 채소 농사를 지었는데, 채소의 가격이 비싸고 중국 사람들이 서천 길산(吉山)까지 배를 타고 와서 채소를 사 가면서 점차 젊은이의 가세가 살아났다. 남자는 일을 하면서도 서천군 한산면 구동리의 박용시라는 선생을 찾아가 공부를 계속 이어 나갔으며, 나중에는 한산향교(韓山鄕校)의 장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남자는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본인이 어렵게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고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게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직접 사랑방에 서당을 차려 놓고는 가난한 집의 자제들을 모아서 돈을 받지 않고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수년이 흘러 나중에는 남자의 제자가 1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제자들은 수업료를 받지 않는 스승을 위하여 위사계(爲師契)를 만들었고, 이후 수업료 대신 조금씩 돈을 모아 논을 사서 위사답(爲師畓)도 마련하였다고 한다. 스승이 죽은 이후 제자들은 스승을 위하여 비석도 세웠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스승을 위한 위사답」의 주요 모티프는 ‘성실함에 대한 보상’과 ‘선행에 대한 보은’이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성실함으로 인하여 학문적 성취를 이룬 주된 인물과 이후의 선행에 대한 제자들의 보은 행위 등이 담겨 있다. 이때 제자들의 보은 행위 중 하나인 위사계, 위사답 등과 같은 당시의 생활 풍속에 대한 내용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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