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104 |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월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 물김채취 부류식 양식법 도입 |
---|---|
의례 장소 | 월하성 물김채취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월호리![]() |
성격 | 어법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월호리 월하성마을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말뚝을 박은 지주식이나 부류식 도구를 매서 물김을 생산하는 풍속.
[연원 및 변천]
월하성 물김채취 의 역사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첫째, 1935년 무렵 서천군 수산과에 다니던 월하성 주민이 대천에서 김 양식을 배워 온 것이 시초라고 전한다. 둘째, 서면 면사무소 앞의 공적비에 따르면 1940년 전라도 장흥에서 올라온 박정순이 도둔리 앞에 지주를 꽂아 김 양식에 성공하면서 시작하였고, 당시 일본으로 수출하였다고 한다. 김은 이전에는 바위에 붙은 것을 채취하는 방식을 취하였으나, 두 가지 설로 미루어 볼 때 대규모 양식을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무렵이라고 하겠다.
초기 김 양식은 가가호호 단위로 이루어진 지주식이었다. 1989년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한 부류식 양식법이 도입되면서 지주식 양식은 소멸하였다. 과거에는 김을 만들어 판매하였으나 부류식이 보급되면서 대량 생산이 이루어져 일일이 김으로 만들기보다 원초를 그대로 홍원항에서 위판하고 있다.
[절차]
월하성마을에서 김 양식을 하는 방법은 지주식과 부류식이 있다. 지주식 양식은 원초가 많이 나는 월하성 앞 띠섬 앞에 말뚝으로 지주를 세우고, 망을 걸어 망에 붙은 원초를 수확하는 방식이다. 부류식 양식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띄워 양식하는 방식이다. 부류식은 채취선과 약배 등의 2척의 배가 필요하므로,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김 양식 허가는 대수가 400책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400책은 사고가 났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이다. 김 양식에 사용하는 그물은 대체로 50m로, 그물 한 망을 1책이라 부른다. 50m 그물 1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4개의 그물을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연결된 4개의 그물이 1세트이다.
김은 초겨울인 11월부터 초봄인 2월에 걸쳐 양식하지만, 본격적인 양식 준비는 9월부터 시작한다. 10월에 그물 준비를 하고, 11월부터 3월까지 15일에 한 번씩 8~10회에 걸쳐 채취가 가능하다. 김 채취는 4명이 작업하지만 수산업협동조합에서 하루 작업 물량을 30자루로 제한하므로, 인원을 줄여 3명이 작업한다. 김 채취선을 타고 양식장으로 나가면, 갈고리를 단 ‘사갓대[사곡대]’로 멀리 있는 김 그물을 끌어당긴다. 김 채취선은 3.5~5톤으로, 한 번에 배 무게의 2배 정도의 김을 운반할 수 있다. 수확한 김은 자루에 담는데, 한 자루에 80~100㎏ 정도를 담는다. 김 한 자루는 그물 50m, 1책에서 거둔 것만을 담는다. 하루에 채취한 김의 양은 김의 성장 상태에 따라 다르다. 김이 길면 양이 많고, 짧으면 양이 적다. 김 채취는 망 1개에서 8~10회 채취하는데, 5~6번째 채취한 김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처음에 채취한 김은 어리기 때문에 연하여 맛이 덜하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물김은 어물의 가격이 낮아 생활 형편이 좋지 않았던 어촌 마을 주민들에게 환전 작물로 중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