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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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屯里 堯峙 堂祭 |
영어공식명칭 | Yochi Religious Ritual for the Village Tutelary Spirit in Dodun-ri |
이칭/별칭 | 도둔리 요치 풍어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시작 시기/일시 | 1980년대 - 도둔리 요치 당제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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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춘장대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
성격 | 마을 제사|공동체 의례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대보름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에서 정월 대보름에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도둔리 요치 당제 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요치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체 의례이다. 요치마을의 당제는 흔히 풍어제라고 부르며, 풍어제, 용왕제, 거리제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렇게 하당제만 지내는 구성은 산신·당산 등을 위하는 상당제와 샘·장승·돌탑·신목 등을 위하는 하당제를 함께 모시는 일반적인 충청도 지역 마을 신앙 유형과 다른 특수성을 띤다.
[연원 및 변천]
1970년대까지는 요치, 남촌 등 도둔리에 속한 8개의 자연 마을에서 남촌마을에 모여 정월 초사흗날에 함께 당제를 지냈다. 안강망 어선으로 크게 어업을 하던 선주들이 모여 당제를 지냈으나 안강망 어선 어업을 중단하면서 더는 합동 당제에 참여하지 않고 각각 자연 마을별로 지내기 시작하였다. 요치마을도 1980년대 초부터 독자적으로 당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당시 주민들이 사이에서는 남촌마을 당산에 있던 진대[뱀]가 허물을 벗고 남촌을 떠나 새로운 신령이 되어 요치로 옮겨 왔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제를 모시는 별도의 제당은 없으나 삶의 터전이 되는 마을 뒤편 춘장대 해변가에서 포장을 치고 제사를 모신다. 용왕제도 춘장대 해변에서 밀물이 가장 한창일 때에 맞추어 지낸다. 거리제는 제관 중 한 명인 당주의 집 앞 삼거리에서 지낸다.
[절차]
풍어제를 지내려면 가장 먼저 제물을 마련한 당주의 집에서 성주고사를 지낸다. 당제를 맡게 되었음을 성주에게 고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축원을 곁들인다. 마을에 거주하던 영신[여성 독경자 또는 무당]이 치성을 맡아 주었으나, 현재는 영신이 외지로 이주하고 제사를 맡겠다는 이가 없어 근래에는 외지에서 무당을 불러온다.
춘장대 해변에 차일을 치고 제사상을 허튼대감상, 거리노중[거리에서 죽어 연고 없이 떠도는 영혼]님상, 삼신상, 요왕상의 순서로 놓는다. 이 중에서 가장 윗어른은 요왕이며, ‘윗목’이라 부른다. 제상 앞쪽에서는 선주들이 배의 기를 꽂아 둔다. 당주가 헌작하고 나서 재배하면, 축관이 한글로 지은 축문을 독축한 후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요왕상 앞에서 올린다. 먼저 요왕 소지, 삼신 소지, 거리노중 소지, 허튼대감 소지의 순서로 올린다.
풍어제를 마친 후 밀물이 가장 높이 찼을 때를 기다렸다가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상에 올린 밥을 김에 싸서 김쌈을 만든다. 선주 부인들이 나서서 각기 김쌈을 싸서, 영신이 비손하여 주면 들고 있던 김쌈을 바다로 던져 넣으며 선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당주의 집에서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해가 넘어가면 당주 부인과 영신, 동네 부녀자들이 당주 집 앞의 삼거리 길가에서 거리제를 지낸다. 당주 부인이 헌작한 후 재배하며, 영신이 당주 집 식구들의 개별 소지를 올려 주고, 참석한 부녀자들의 소지도 올려 준다.
[축문]
한글로 지은 축문이 마을에 보관되어 있다.
[부대 행사]
거리제를 지내기 이전이나 그 이튿날에 선주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도둔리 요치 당제에 쓰인 비용을 결산한다. 이를 ‘하기닦기’라고 부른다.
[현황]
도둔리 요치 당제 는 2023년 2월 5일[음력 1월 15일]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지 3년 만에 마을 회관 앞에서 거행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