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884 |
---|---|
한자 | 忠襄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주원로41번길 92[주항리 496-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경동 |
이전 시기/일시 | 1938년 - 충양사 이건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3년 - 충양사 중수 |
현 소재지 | 충양사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주원로41번길 92[주항리 496-2]![]() |
원소재지 | 충양사 - 경기도 과천시 |
성격 | 사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사당] |
측면 칸수 | 1칸[사당]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주항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사당.
[개설]
충양사(忠襄祠)는 청주 한씨 한명회(韓明澮)[1415~1487], 한보(韓堡)[1447~1522], 한여복(韓汝復)[1584~1648] 등 3인을 모신 사당이다. 한명회는 청주 한씨의 중시조로 조선 전기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세조를 즉위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세조 즉위 후에도 정난공신, 좌익공신, 익대공신, 좌리공신 등에서 모두 1등으로 책봉되었으며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기도 한 권신이었다. 연산군 즉위 후 갑자사화가 발생하여 한명회는 부관참시당하였으나 중종반정 이후 신원되었다. 한보는 한명회의 아들로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어 국정에 참여하였으나 연산군 즉위 후 갑자사화로 인하여 화를 당하였다. 한여복은 한명회의 6대손으로 인조반정 당시 백금을 기부하여 정사공신 3등에 책봉되었다.
[위치]
충양사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주원로41번길 92[주항리 496-2]에 있다.
[변천]
충양사는 본래 경기도 과천시에 있던 사당으로 건립 시기는 자세하지 않다. 충양사가 화재로 소실되면서 1938년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이후 1993년 충양사를 중수하였다.
[형태]
충양사는 사당와 외삼문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당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고, 외삼문에는 ‘청익문’이라고 현액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충양사는 한명회 등 청주 한씨의 권신들을 배향함으로써 친족 간의 결속을 도모하는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