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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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민영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 허완 출생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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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허완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5일 - 허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09년![]() |
출생지 | 허완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 |
활동지 | 신장리 장터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허완(許完)[1880?~?]은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29일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날에 전개된 만세 시위는 송여직, 송기면, 유성열 등의 주도 아래 일어났다. 군중 2,000여 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고, 송기면 등 주도 인물들이 일제 경찰에 의하여 주재소로 연행되었다. 분노한 시위대는 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주도 인물 6명을 탈출시키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인 뒤 한산면을 거쳐 서천면 방면으로 행진하다가 해산하였다.
허완은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5일 서천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맞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허완의 공훈을 기리어 200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