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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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泰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민영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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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9일 - 문태근 신장리 장터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0일 - 문태근 화산리(花山里)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문태근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출생지 | 문태근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 |
활동지 | 신장리 장터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
활동지 | 화산리(花山里)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화산리(花山里)![]()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문태근(文泰根)[1882~?]은 1882년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29일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터에서 송기면·유성렬·이근호·임학규 등의 주도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송기면 등은 태극기 200장을 미리 준비하여 장날인 3월 29일 신장리 장터에 나와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수백 명의 군중이 호응하였다.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하여 출동하여 현장에서 송기면·유성렬 등 주모자들을 붙잡아 주재소로 연행하였다. 군중이 크게 분노하여 만세 시위에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연행된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주재소로 몰려가 창문과 집기를 파괴하고 연행된 인사들을 모두 구출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한산면을 경유하여 서천읍을 향하여 행진하던 중 서천군수 권익채(權益采)의 권고로 자진 해산하였다. 이어 다음 날인 1919년 3월 30일 종천면 화산리(花山里)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에도 동참하였다.
문태근은 충청남도 서천군의 마산면, 종천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가담한 일로 인하여 일경에 피체되었다. 1919년 4월 1일 서천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맞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문태근의 공훈을 기리어 201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