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04
한자 洪冞
영어공식명칭 Hong Mi
이칭/별칭 자진(子晋),과묵당(果黙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4년연표보기 - 홍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6년 - 홍미 이몽학의 난 진압 가담
활동 시기/일시 1605년 - 홍미 청난원종공신 녹훈
활동 시기/일시 1637년 - 홍미 심양으로 인평대군 호종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홍미 귀국하여 삼가현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49년연표보기 - 홍미 사망
출생지 요곡리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요곡리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삼가현감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문신.

[가계]

홍미(洪冞)[1584~1649]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자진(子晋), 호는 과묵당(果黙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윤창(洪胤昌)이고, 할아버지는 홍온(洪昷)이다. 아버지는 홍민신(洪敏臣)이고, 어머니는 신담(申湛)의 딸 고령 신씨(高靈 申氏)이다. 아들은 홍우혁(洪宇爀)·홍우훈(洪宇勳)이다.

[활동 사항]

홍미는 1584년(선조 17)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요곡리에서 태어났다. 1596년 당시 홍주목사이던 큰아버지 홍가신(洪可臣)을 도와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는 데 참여하였고, 1605년 청난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홍미는 이안진(李安眞) 등과 함께 군사를 모아 직산으로 행군하였으나 조선이 항복하고 청나라와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회군하였다. 1637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는 인평대군(麟坪大君)을 호종하여 심양으로 갔다가 1637년에 귀국하였고, 인평대군을 호종한 공으로 삼가현감에 제수되었다. 홍미는 1649년 병환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사망하였다.

[묘소]

홍미의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벽용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홍미는 사망한 뒤 지금의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 152에 있는 화산서원(華山書院)에 배향되었다. 화산서원에는 홍미를 비롯하여 권양(權讓)·권벽(權擘)·권필(權韠)·권변(權忭)·권성(權𢜫)·조수윤(趙守倫)을 배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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