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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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山謙 |
영어공식명칭 | Yi Sangyeo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지역의 토성인 한산 이씨 문중의 의병장.
[가계]
이산겸(李山謙)[?~1594]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이지함(李之菡)의 서자이다.
[활동 사항]
이산겸은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월에 의병장 조헌(趙憲)의 휘하에 들어가서 활동하였고, 조헌이 전사하자 군사들을 수습하여 평택과 진위 등지에 주둔시키고 건의대장(建義大將) 심수경(沈守慶)의 통제를 받았다. 이 시기 이산겸 등의 의병들은 중요한 길목에 매복하였다가 왜군 부대를 공격하여 많은 왜군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1593년 이산겸은 의병 부대를 해산한 뒤 귀향하였다가 건의부장으로 임명한다는 국왕의 전지를 받고 군사 25명을 인솔하여 경상도로 내려갔다. 이후 충청도관찰사의 공문에 따라 의진(義陣)을 다시 편성하였다가 얼마 뒤 군량과 군기를 바치고 해산하였고, 세자를 호위하기 위하여 전주와 담양을 거쳐 김덕령(金德齡)의 휘하로 들어갔다.
이산겸은 1594년 송유진(宋儒眞)이 난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반란 세력의 수괴로 지목되었고, 조헌의 휘하에서 같이 활동하였던 전직(田稙)·원수심(元守心)·안준도(安遵道) 등과 함께 체포되어 국문을 받던 중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