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신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577
한자 高靈 申氏
영어공식명칭 Goryeong Shi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96년연표보기 - 신영원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72년연표보기 - 신영원 사망
본관 고령 - 경상북도 고령군
입향지 어은동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신영원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표동]지도보기
성씨 시조 신성용(申成用)
입향 시조 신영원(申永源)

[정의]

신성용을 시조로 하고 신영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천군의 세거 성씨.

[연원]

고령 신씨(高靈 申氏)는 고려 후기 검교군기감을 지낸 신성용(申成用)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고령 신씨의 본관인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은 본래 대가야국(大伽倻國)이었다가 삼국 시대 신라의 대가야군(大伽倻郡)이 되었고, 신라 경덕왕 때 고령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경산부(京山府)에 속하여 명종 때 감무를 두었고, 조선 초기 태종 때는 현(縣)이 되었다가 고종 때 고령군이 되었다.

[입향 경위]

충청남도 서천군의 고령 신씨 입향조는 신성용의 12세손 신영원(申永源)[1496~1572]이다. 신영원은 본래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살았는데, 당시의 충청도 한산군 남하면 어은동[현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에 살고 있던 한산 이씨(韓山 李氏) 가문 이윤수(李允秀)의 셋째 딸에게 장가들어 처가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신영원의 아들 신담(申湛)[1519~1595]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후대에 신광수(申光洙)[1712~1775]·신광연(申光淵)[1715~1778]·신광하(申光河)[1729~1796]·여류 시인 부용당 신씨[1732~1791] 등을 배출하면서 서천 지역의 고령 신씨는 명문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조선 시대 생원·진사시 합격자 명단을 기록한 『사마방목(司馬榜目)』에는 신담·신광수·신광하·신광연 외에도 신맹권(申孟權) 등 한산에 거주하는 고령 신씨 인물들의 생원·진사시 합격 사실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또한 『사마방목』에는 한산뿐 아니라 비인에 거주하고 있던 고령 신씨 인물인 신효연(申孝淵)·신정권(申鼎權)의 합격 사실도 함께 확인된다.

[현황]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서천군에 거주하는 고령 신씨는 총 88명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표동]에 고령 신씨 서천 입향조 신영원의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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