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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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4년 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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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한산세모시짜기 충청남도 무형문화문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한산세모시짜기 충청남도 무형유산으로 변경 |
현 소재지 | 한산모시관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충절로 1089[지현리 60-1]![]()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태모시를 가늘게 쪼개어 세모시를 짜는 일.
[개설]
모시는 올의 굵기에 따라 ‘세모시[細苧]’, ‘중간 모시[中苧]’, ‘굵은 모시[막저]’ 세 종류로 나눈다. 올의 굵기를 ‘새’ 혹은 ‘승(升)’이라고 하는데, 가늘수록 숫자가 커진다. 새는 9승 이상의 가는 모시 올을 셀 때만 사용하고, 승은 9승부터 9승 아래의 굵은 모시 올을 셀 때 주로 사용한다. 세모시는 가장 가는 올의 세저로 짠 모시를 가리키는데 보통 10새 이상을 세모시라고 한다. 한산세모시는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늘고 곱기로 유명하다.
[연원 및 변천]
세모시의 유래와 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삼한 시대의 변한과 진한에서는 이미 ‘광폭세포(廣幅細布)’를 직조하였을 정도로 고운 모시가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40승 백저포(白苧布), 30승 저포(苧布) 등의 기록이 보인다. 오늘날의 모시와 비교하면 18승 이상의 포가 되므로 매우 곱게 짠 것이다. 새 또는 승의 수가 높을수록 올이 가느다란 고급 모시이므로 당시의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하여 준다.
[내용]
세모시는 가장 가늘게 짠 모시를 말한다. 따라서 모시를 짜는 데 각별한 정성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고도의 제직 기술이 요구된다. 더구나 모시풀을 베어 속대에서 겉껍질을 벗겨 낸 속껍질, 즉 태모시를 아주 가늘게 찢어야 하므로 생산량도 제한적이다. 과거 한산세모시는 12~15새를 짰다. 그러나 현재 15새는 전승이 단절된 상태이고, 12새에서 9승 사이를 짠다. 12새에서 9승 사이 정도의 세모시만 되어도 주변에서 ‘내리다[가늘다]’라는 말을 듣는다.
한산모시를 짜는 과정은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및 모시 표백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데 자세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태모시 만들기: 모시풀을 베어 낫과 같이 생긴 손가락 크기의 특수한 칼로 훑어서 모시풀의 겉껍질과 속껍질을 분리시킨다. 분리된 속껍질을 태모시라고 한다. 태모시를 물에 적셨다가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4~5회 반복한다.
② 모시째기: 잘 말린 태모시를 앞니와 입술을 이용하여 가늘게 쪼갠다. 이때 모시 올의 굵기가 결정된다. 모시째기는 한산세모시짜기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태모시를 얼마나 가늘고 균일하게 쪼개는지와 보풀의 유무에 따라 세모시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③ 모시삼기: 쪼갠 모시 올을 이어 실을 만드는 과정이며 실의 균일도는 이때 결정된다. 모시째기가 끝난 모시 올을 ‘쩐지[전지]’라는 틀에 걸어 놓고 한 올씩 빼서 두 끝을 무릎 위에서 맞이어 침을 바르며 손바닥으로 비벼서 이어 붙인다. 길게 한 가닥으로 이은 덩어리 모시실을 ‘모시굿’ 또는 ‘굿모시’라고 하는데, 이때 모시 올의 굵기에 따라 새가 결정된다. 모시는 통상적으로 7새에서 15새까지 제작되는데 보통 10새 이상을 세모시라고 하며 숫자가 높을수록 고급품으로 여긴다. 1새는 30㎝의 폭에 80올의 날실로 짠 것을 말한다.
④ 모시날기: 모시삼기가 끝난 모시를 ‘젖을개[조슬대]’라는 틀에 매어 젖을개의 구멍으로 실끝을 통과시켜 한 묶음으로 한 후 날틀에 걸어 한 필의 길이에 맞추어서 날실의 길이로 날고 새 수에 맞추어 날실의 올수를 맞춘다. 실의 굵기에 따라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⑤ 모시매기: 모시날기를 끝낸 날실을 새 수에 맞는 바디에 끼워 한쪽 끝은 도투마리에 매고, 다른 한끝은 끌개에 매달아 날실을 팽팽하게 고정한다.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도록 콩가루와 소금을 물에 풀어 만든 풀을 솔에 묻혀 날실에 먹이고 날실 밑에 불을 피워 천천히 말린 뒤 도투마리에 감아 날실에 쓸 실을 완성한다.
⑥ 모시짜기 : 모시 올을 도투마리에 감는다. 씨실은 모시굿에서 실을 잡아다가 꾸리에 감아 북에 넣어 사용하고,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에 얹어 잉앗실을 걸고 베틀에 앉아 모시를 짠다. 가늘고 고운 세모시를 짤 때 습도가 낮으면 모시 실이 잘 끊어져 예전에는 습기가 있는 움집이나 토굴에서 작업하였다.
⑦ 모시 표백하기 : 완성된 모시를 물로 헹군 뒤 콩즙을 빼기 위하여 잿물에 1~2시간 정도 담갔다가 건져 낸다. 건져 낸 모시를 햇볕에 말린 뒤 따뜻한 물을 뿌려 가며 방망이로 두들겨서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모시를 반제라고 하며, 반제를 그대로 말려서 손질한 뒤 보관한 것을 생모시라고 한다.
[현황]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름 전통 옷감인 한산세모시는 섬세하고 단아하여 여름철 옷감 중 으뜸으로 친다. 한산세모시짜기는 제작 기술을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하여 나상덕 기능 보유자가 1974년 8월 31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변경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무형유산으로 바뀌었다.
수직기에 의한 전통적인 한산세모시짜기는 18세 때 처음 베틀을 잡은 나상덕이 기능 보유자가 되어 전통을 이어 왔다. 2016년 나상덕이 세상을 떠나면서 2018년 6월 나상덕의 딸 박미옥이 기능 보유자로 인정을 받아 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한편 충청남도 무형유산인 한산세모시짜기도 1967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한산모시짜기와 같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산세모시짜기가 모시 올이 가늘어 한 필을 짜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고난도의 숙련된 기술을 요할 뿐만 아니라 모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우며 최고의 천연 옷감으로 명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