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부인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301
한자 竹夫人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조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298년 8월 25일 - 이곡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351년 1월 28일 - 이곡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364년 - 「죽부인전」 『가정집』에 수록
편찬|간행 시기/일시 1478년 - 「죽부인전」 『동문선』 권101에 수록
성격 가전체 소설
작가 이곡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죽촌리 출신 이곡이 고려 후기에 지은 가전체 소설.

[개설]

「죽부인전」은 고려 후기에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이 쓴 한문본 가전체 소설이다. 조선 시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동문선(東文選)』 권101과 이곡의 글과 시를 모아 펴낸 『가정집(稼亭集)』에 전하고 있다. 「죽부인전」은 대나무[竹]를 부인으로 의인화하여 사람들에게 지조와 절개에 관한 교훈을 주고자 한 작품이다.

[구성]

「죽부인전」은 ‘가계’, ‘행적’, ‘논평’의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첫째 단락은 죽의 이름과 성을 이야기하고, 둘째 단락은 죽부인의 선계(先系)와 공덕을 찬양하였다. 대나무의 지조와 성품을 강조하였으며 송대부(松大夫)와 혼인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셋째 단락은 사씨(史氏)의 평을 빌려 이곡이 작품을 통하여 전하고자 한 뜻을 강조한 내용인데, 사물 하나하나를 연관성 있고 조리 있게 표현하였다.

[내용]

죽부인의 성은 죽(竹)이고, 이름은 빙인데, ‘운(篔)[왕대나무의 의인화]’의 딸이다. 집안의 시조는 창랑(蒼筤)[어린 대나무의 의인화]이었는데, 음률을 알았으므로 황제가 창랑을 등용하여 음률을 맡게 하였다. 마침내 운에 이르자 은둔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운이 익모(益母)[익모초]의 딸을 아내로 맞아 딸을 낳았는데, 운의 딸이 바로 죽부인이다. 이웃 총각인 의남(宜男)이 음란한 말로 죽부인을 희롱하였으나 정숙한 죽부인이 꾸짖으니 의남이 부끄러워 자리를 떠났다. 이웃에 사는 송대부(松大夫)[소나무의 의인화]가 예를 갖추어 청혼하니, 부모가 송대부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허락하였다. 죽부인의 성격이 곧고 두터워서 문여가(文与可)[1018~1079]나 소식(蘇軾)[소자첨(蘇子瞻), 1036~1101]과 같은 이들은 죽부인의 얼굴을 그려 전하면서 보배로 삼고 행실을 본받았다. 송대부는 나이가 죽부인보다 18세 위였는데 늦게 신선의 학술을 배워 곡성산(穀城山)에 노닐다가 돌로 변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청분산(靑盆山)으로 집을 옮겼다. 죽부인은 술 마시기를 좋아한 탓에 술로 인한 고갈병이 나서 돌보아 주는 이에게 의지하여야 지낼 수 있었는데도 재혼하지 않고 오래도록 혼자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절개가 더욱 굳어져 마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특징]

「죽부인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시대의 현실을 풍자하고, 정치와 사회에 교훈을 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당대의 시대적 가치와 도덕적 윤리를 담아내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곡이 살던 당시의 고려는 국운이 기울어진 탓에 궁궐이나 여염의 기강이 풀려 남녀 관계가 극히 문란하였다. 퇴폐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일종의 열녀전 성격의 소설인 이곡「죽부인전」이 윤리적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죽부인을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부각시키키고 당시 시대상을 비판함으로써 사회적 병폐를 지양하자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작품이다. 이러한 가전체 소설은 설화와 소설을 이어 주는 교량의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나라 소설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