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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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조씨 집안 옥녀직금형 명당」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호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2월 4일 - 「무학대사와 옥녀직금 명당」 신광호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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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5년 12월 8일 - 「무학대사와 옥녀직금 명당」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
관련 지명 | 화양면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
채록지 | 보현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보현리![]() |
성격 | 설화|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무학대사|동자 |
모티프 유형 | 산소|명당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에서 무학대사와 풍양 조씨 집안 명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무학대사와 옥녀직금 명당」은 무학대사(無學大師)[1327~1405]가 풍양 조씨(豊壤 趙氏)를 위하여 처음 잡은 묏자리가 실수로 잘못 잡은 줄 알았지만, 동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하여 명당임을 확신하였다는 내용이다. 풍양 조씨 산소가 명당자리인 이유를 밝히는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무학대사와 옥녀직금 명당」은 2010년 2월 4일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보현리 주민 신광호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무학대사가 풍양 조씨 집안의 묏자리로 직녀봉을 잡아 주었다. 그런데 무학대사가 봉우리에 앉아서 다시 보니 백강(白江)이 비치는 것이었다. 무학대사는 자신의 실수로 묘를 쓸 곳이 아닌 곳을 잘못 잡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하고 있던 무학대사 앞에 몇 명의 동자가 보였다. 동자들은 나무 지게를 받치고 묘처럼 도독하게 흙을 쌓은 땅을 지게 작대기로 치며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 동자가 지게 작대기로 공을 때리지 않고 땅을 때려 대니, 다른 아이들이 “야, 이 미련한 놈아, 공을 때려야지 엉뚱한 곳을 때리냐? 이놈이 무학이 같은 놈이다!” 하였다.
그 순간 무학대사는 “베를 짜는 데 북물 없이 짜는 베틀이 어디 있느냐?” 하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베를 짤 때는 실꾸리를 물에 담갔다가 북통에 넣어서 짜야 하니 북물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백강이 비치는 직녀봉이야말로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옥녀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는 모습]’의 명당인 것이 분명하였다. 동자들의 대화에서 깨달음을 얻은 무학대사 덕분에 풍양 조씨는 옥녀직금형 명당자리를 차지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무학대사 앞에 나타난 동자는 어린아이 모습을 한 산신이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모티프 분석]
「무학대사와 옥녀직금 명당」의 모티프는 ‘산소, 명당’이다. 옥녀직금형 명당은 옥녀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듯 훌륭한 인물이 끊임없이 배출된다는 형국이다. 충청남도 서천군의 한산이 모시 생산지이기 때문에 이처럼 옥녀직금형 풍수담이 전하여 내려온다고 볼 수 있다. 무학대사와 관련된 풍수담이 여러 가지 전하여 내려오는 것은 무학대사가 지관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났음을 보여 준다. 더욱이 산신이 동자로 변신하여 명당자리에 대한 조언을 하였다는 설정은 무학대사가 타고난 능력이 보통 승려와는 달랐음을 말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