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리 드르메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095
영어공식명칭 Deureume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Okpo-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 드르메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재개 시기/일시 1980년대 초반 - 옥포리 드르메 당산제 재개
중단 시기/일시 2000년대 초반 - 옥포리 드르메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수고정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지도보기
성격 마을 제사|공동체 의례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이렛날
신당/신체 수고정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에서 정월 초이렛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옥포리 드르메 당산제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 드르메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초이렛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체 의례이다. 제사는 ‘드르메’라고 불리는 산꼭대기에 있는 정자인 수고정(戍鼓亭)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 하산하여 용왕제와 거리제를 순서대로 거행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옥포리 드르메 당산제 의 구체적인 유래는 알 수 없다. 과거부터 계속 전승되어 오다가 일제 강점기 후반에 중단되었던 것이 1980년대 초반에 재개되었다. 당산제 재개 당시에 마을 앞 신작로에서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인근 나루터에서 익사 사고마저 빈번하여지자 마을의 신령을 위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당산제를 재개하였다고 한다. 그 무렵에 마을 주변에서 석탄을 채굴하면서 생기는 폭파음 때문에 당산의 신령이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옥포리 드르메 당산제는 재개된 이후 계속되어 오다가 2000년대 초반에 제사를 주관하던 마을 사람들이 사망하고 젊은 주민들 대부분이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제를 지내는 수고정은 드르메라고 불리는 산의 꼭대기에 있다. 원래 조선 시대부터 있던 정자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980년대에 시멘트를 이용하여 팔각형의 형태로 개축한 건물이다. 당산제를 지낼 때는 수고정에 병풍을 두르고 제사를 모신다. 용왕제는 당산 아래에 있는 금강 강가의 옥포나루 선착장에서 지낸다. 거리제는 옥포리 마을 어귀의 삼거리에서 지낸다.

[절차]

제사는 남자가 아닌 마을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제사 비용을 걷고 제사를 주관한다. 남자들은 풍물을 쳐 주고, 독축을 하는 것만 맡는다. 부녀자들이 주동이 되어 집집마다 성의껏 제사 비용을 나누어 내어 제물을 마련한다. 제물은 삼색과일, 시루떡, 포, 돼지머리 3개를 준비하였다. 떡을 마을에서 직접 만들던 시절에는 힘이 들어도 절구공이를 땅에 내려 놓지 않고 소금도 넣지 않는 등의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제물이 마련되면 당산제를 지내러 수고정으로 가는데, 이때 남자들이 풍물을 쳐 준다. 과거에는 용한 당골[무속인]을 불러 축원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헌작, 재배, 독축 순으로 제사를 모시고 나서 부녀자들이 나서서 소지를 올린다. 이렇게 당산제를 마치면 하산하여 용왕제를 모신다. 금강 강변의 옥포나루 선착장에 도착하면 짚을 깔고 제물을 차린다. 당산제에서 사용한 제물과 동일하지만 별도로 마련하여 둔 제물을 차려 놓고 나서 헌작, 재배, 독축으로 이어진다. 용왕제에 올린 떡과 과일은 김에 조금씩 싸서 강물에 던져 넣고, 돼지머리는 코, 귀, 입 부위를 조금씩 베어서 역시 강물에 던져 넣는다. 용왕제를 마무리하면 마을 어귀 삼거리에서 거리제를 모신다.

[현황]

옥포리 드르메 당산제 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단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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