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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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望月里 新芽 堂山祭 |
영어공식명칭 | Sina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Mangwol-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의례 장소 | 당집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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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제사|공동체 의례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하룻날 |
신당/신체 | 당집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에서 정월 초하룻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망월리 신아 당산제 는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 신아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체 의례이다. 신아마을의 당산제는 당산제, 유왕제, 거리제, 샘제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러한 구성은 산신·당산 등을 위하는 상당제와 샘·장승·돌탑·신목 등을 위하는 하당제를 함께 모시는 유형으로서 충청도 지역의 마을 신앙에서 흔히 나타난다.
[연원 및 변천]
망월리 신아 당산제 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신아마을 주민들은 마을이 처음 형성되고 나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평안을 위하여 지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00년대가 되어 마을 회의에서 당산제를 중단하기로 결의하면서 당산제의 전승이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아마을 뒤편에 있는 야트막한 망월산에 당산제를 모시는 당집이 있다. 망월산은 주민들이 ‘당산’이라고 부르는데, 표고 20m의 낮은 야산이지만 강변에 있어 도드라져 보인다. 당집은 망월산 꼭대기의 남쪽에 있다. 당집의 벽은 돌과 흙을 섞어서 쌓았고, 슬레이트를 맞배지붕 형태로 올린 단칸집이다. 당산제를 중단한 이후로 당집 주변에는 풀이 우거져 평소에 접근하기 어렵지만, 당집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절차]
제사는 당산제-유왕제-거리제-샘제의 순으로 진행된다. 정월 초하룻날 저녁에 망월산의 당집에서 당산제를 지내려고 섣달그믐에 동네 주민 중 부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집에 올라가 당집 주변의 잡초를 베어 내고 청소를 한다. 제물은 제사를 주관하는 이들이 동네논에서 나오는 수확으로 장만한다. 제사의 주관은 주민 중 정하여 둔 3명이 맡는데, 특별히 제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 3명은 목욕재계를 한 후 정갈한 마음으로 제사를 모신다. 제물은 별도로 정갈한 할머니를 선정하여 맡긴다. 제사를 모시기 닷새 전부터 매일 목욕재계하고, 금줄을 대문 앞에 치고 이장이 마련하여 준 소고기, 조기, 고사리, 뜸부기나물, 삼색과실, 명태 등으로 제물을 마련한다. 메는 집에서 쌀을 7번 씻어 솥에 담아서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건네면 당산에서 직접 지어서 올린다.
제사를 지내는 당일 저녁에 부정하지 않은 남자들이 모여서 풍물을 치면서 제사 모시는 사람들과 행렬을 지어 당산으로 올라간다. 메가 완성되면 제사상에 올리고 제사를 모신다. 헌작 후 재배하고, 축문은 읽지 않으며, 3명이 나란히 앉아 소지를 각각 한 장씩 올린다. 그러고 나서 당산제 제물을 조금씩 골고루 백지에 싸는데, 이러한 것을 ‘봉송’이라 부른다. 하산한 3명은 금강 강가에 도착하여 봉송을 물속으로 던져 넣으며 “신아마을 농사가 잘되고, 각 호마다 건강하고 복 많이 들어오게 하소서.”라고 기원한다. 강변에서 지내는 이러한 제사는 ‘유왕제’라고 구분한다. 남자들이 유왕제를 지내는 동안 동네 부녀자들은 마을 어귀 삼거리로 나가서 거리를 다녀도 무탈하기를 기원하며 거리제를 지낸다. 공동 샘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샘제를 지냈으나, 샘물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샘제는 중단되었다. 제사를 마친 후에는 제물을 마련한 가정에 모여 음복을 하고 제사 비용을 정산하였다.
[현황]
망월리 신아 당산제 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중단되었다. 당산제의 일부인 샘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