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두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028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업 생산 풍습
의례 시기/일시 한여름

[정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모시풀로 실을 내어 베를 짜는 공동 노동의 한 형태.

[개설]

충청남도 서천군을 대표하는 특산품으로는 서천군 한산면에서 생산되는 한산모시를 들 수 있다. 한산모시는 다른 지역보다 품질이 우수하여 예부터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어 왔으며, 한산모시짜기가 국가무형유산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서천 지역에서는 이러한 모시를 짜는 데에 전통적인 공동 노동 조직체인 두레를 활용하여 왔으니, 이를 모시두레라고 한다. 거의 모든 마을 사람이 참여하여 마을 단위로 구성하는 일반적인 두레와 달리, 모시두레는 가족이나 가까운 마을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특징이다.

[연원 및 변천]

모시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등에 비교적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가운데 모시 직조 기술이나 품질 등에 대하여서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삼국사기』에는 6부의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내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공동체에 의한 집단 길쌈내기인 점으로 보아 모시두레의 시원이 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당시의 길쌈내기는 국가의 강제에 의한 공동 노동이라는 점에서 민간의 자발적 모시두레와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서천 지역의 모시두레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모시를 수확하여 실을 삼고 옷감으로 짜기까지의 과정이 한두 사람만의 노동력으로 쉽사리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동 노동의 필요성이 요구되었을 듯하며, 고된 노동의 수고로움을 잊고자 모시두레를 통하여 한곳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절차]

서천 지역에서 모시두레를 형성하는 것은 모시 직조 작업에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곧 건조할 때 모시 작업을 하게 되면 실이 끊어져 좋은 옷감을 얻을 수 없게 되므로, 습도가 높은 한여름의 일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작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곧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작업을 통하여 모시 직조를 완성하여야 하기 때문에 모시두레와 같은 공동체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모시의 제작 과정은 크게 모시풀을 재배하고 수확하여 태모시[모시의 겉껍질을 벗긴 속껍질]를 만들고,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등을 거쳐 표백하여 실을 자아 직조하는 순으로 이루어진다. 모시두레의 주체는 모시풀을 재배하는 농가의 주부인데, 농가의 주부가 모시를 제작하는 노동 과정 중에서 모시두레로 함께 공동 노동을 할 작업을 선택하여 두레원들과 함께 해당 작업을 진행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모시는 생육조건이 까다로운데 서천 지역은 모시의 생육 환경에 적절하니, 여름 기온이나 강수량, 습도 면에서 모시 재배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천의 한산면 일대가 토양이 비옥하고 바닷바람이 모시풀 생육에 도움이 되기에 모시 재배의 최적지로 손꼽혀 왔다. 오늘날까지 서천 한산에서 모시 재배와 직조가 유지·전승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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