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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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𥛚 |
영어공식명칭 | Gwon Jeok |
이칭/별칭 | 경하(景賀),남애(南厓),창백헌(蒼白軒),효정(孝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가계]
권적(權𥛚)[1675~1755]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경하(景賀), 호는 남애(南厓)·창백헌(蒼白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전(權佺)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집의 권양(權讓)이다.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고, 어머니는 이상응(李尙膺)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부인은 이수형(李秀衡)의 딸 한산 이씨(韓山 李氏)이다.
[활동 사항]
권적은 1675년(숙종 원년) 서천에서 태어났다. 1710년(숙종 3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13년 대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716년 예문관의 검열과 대교 등을 거쳐 1721년(경종 1)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고, 1725년(영조 1)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다. 이후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부교리 등을 거쳐 1726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다.
권적은 1727년 승정원승지를 지냈고, 1733년 이조참의 재임 중 박문수(朴文秀)를 전라도관찰사로 차출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끝까지 고집하다가 기장현감으로 쫓겨났다. 1738년 강화유수로 나아가서는 고려 문신인 이규보(李奎報)의 묘에 비석을 세웠고, 이후 예조참판·사헌부대사헌·승정원도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권적은 1742년 병조참판을 지냈고, 1743년 한성부좌윤이 되어서는 도성을 지킬 계책 27조항을 내용으로 하는 상소를 올렸다. 1745년에는 경기도관찰사·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권적은 1746년 이후 한성부판윤·형조판서·예조판서·의정부좌참찬 등을 역임하고 1755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