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41
한자 勞動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개 시기/일시 1924년 5월 - 용연노동조합 창립
전개 시기/일시 1927년 6월 23일 - 인접노동조합 창립
전개 시기/일시 1928년 2월 20일 - 길산포우차조합 창립
전개 시기/일시 1928년 9월 - 서천노동조합 창립
전개 시기/일시 1930년 6월 - 산서철도노동회 설립
성격 노동운동
관련 인물/단체 길산노동조합|한산노동조합|길산포우차조합|용연노동조합|서천노동조합|수동노동조합|산서철도노동회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전개된 노동운동.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는 비옥한 농지에서 생산된 미곡의 하역 작업을 위하여 많은 인부들이 모여들었다. 미곡 수탈 과정에서 부설된 경남철도가 서천을 거쳐 장항에 이르면서 철도 노동자들도 유입되었다. 또한, 장항항이 건설되고 장항제련소가 설립되면서 새로운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경과]

일제 강점기 서천 지역 노동자들은 저임금, 열악한 처우뿐만 아니라 일본인 감독관, 십장 등의 탄압으로 고통받았다. 또한 전라북도 군산에서 선박을 운용하는 일본인들이 임명한 군산의 한국인 감독관은 군산 지역 노동자를 고용하고 서천 지역 노동자들은 임시 노동자로 활용하여 서천 지역 노동자들은 이중 차별을 당하였다. 1920년대부터 서천에서는 노동 단체들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24년 4월 길산노동조합, 한산노동조합 지점이 활동하였다. 서천군 서천면 삼산리[현 서천읍 삼산리]에서는 여러 노동조합이 활동하였다. 삼산노동조합이라고도 불린 길산노동조합의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노동 야학 운영이었으며 조합원 수는 300여 명이었다. 1927년 6월 23일 인접노동조합도 창설되어 일본인 정미업자와 공장주들에게 저임금과 인격적 모욕으로 탄압받던 노동자들을 결집시켰다. 1928년 2월 20일에는 길산포우차조합이 창립되어 우차를 모는 차꾼의 권익을 지키고자 하였다.

금강 연안으로 선박의 왕래가 빈번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집결하였던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에서는 1924년 5월 용연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서천 읍내에서는 1928년 9월 서천노동조합이 창설되어 경남철도 공사에 대비하였다. 마동면 수동리[현 장항읍 원수리]에서는 1920년 조직된 노동친목회가 1925년 수동노동조합으로 발전하여 하역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였다. 마동면 산서리[현 장항읍 성주리]에서는 1930년 6월 산서철도노동회가 설립되어, 임시 노동자로만 고용되어 군산 노동자들보다 임금이 낮았던 장항 노동자들의 단결과 친목을 도모하며 차별 철폐 투쟁을 전개하였다.

[결과]

일제 강점기 서천 지역 노동자들은 열악한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 차별 철폐를 위하여 조합 활동으로 맞섰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서천은 군산과 같은 생활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서울과도 직접 연결되어 활동한 군산과 다르게 신간회나 청년동맹 같은 사회 운동 단체가 독자적으로 설립되지는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서천 지역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일제 침탈에 저항하는 민족 운동적인 성격도 담고 있어 역사적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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