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396
한자 安保鄕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범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에 있었던 고려 시대 특수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안보향(安保鄕)이 어느 시기에 설치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시대 이후부터 조선 전기까지 한산 지역의 특수 행정 구역 중 하나로 기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기록에서 한산군의 특수 행정 구역으로는 안보향안곡소(鷃谷所)가 존재하였다. 향(鄕)은 소(所)나 부곡(部曲)과 같이 노비나 천민과 유사한 특수 신분이 거주하던 행정 구역이다. 소나 부곡과 달리 농업 생산에 치중하여 국가에 여러 가지 역을 부담하였다.

[관련 기록]

안보향은 고려 시대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조선 전기 기록에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1530년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적조에는 ‘안보향이 군 남쪽 15리[약 6㎞]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나, 1454년 간행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로써 안보향은 16세기를 전후하여 혁파되고 일반 행정 구역화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안보향은 한산 읍치 남쪽 15리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현재 서천군 화양면 보현리 안보마을로 추정된다. 비인현의 옥전과는 달리 성씨 관련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집단 성씨 세거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보면, 충청도 한산군 남하면(南下面)의 한 리(里)로 안보향리(安保鄕里)가 있었다. 관문(官門)에서 10리[약 4㎞] 떨어져 있으며, 편호(編戶)는 59호이고, 남자 인구 91구, 여자 인구 121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 밖에 안보향리에는 제언(堤堰)도 존재하였는데, 명칭은 안보제(安保堤)였다. 군 남쪽 10리에 있으며 둘레는 135장(丈)[약 405m]이고 수심은 8척(尺)[약 2m]이었다.

[변천]

향은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투항하여 발생한 백성들의 거주지, 반역 죄인의 집단 유배지, 특수한 생산직 노비의 거주지 등을 이유로 형성되었다. 사회 발전에 따라서는 향과 같은 특수 행정 구역은 통합과 흡수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므로 조선 전기에 존재하던 138개 향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단계에 이르면 13개만 남게 되었다. 안보향은 이러한 과정에서 혁파되었고, 이후 한산군의 면리에 편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안보향은 충청도 한산 지역에도 특수 행정 구역이 존재하였으며, 남하면 안보향리의 명칭과 같이 한산군의 면리로 편제되는 과정을 거쳤음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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