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천군의 역사. 해방 이후인 1947년 말 충청남도 서천군 인구는 13만 명이었다. 1947년 일제 강점기 건설된 장항제련소가 재가동되며 서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었고 1964년에는 장항항이 국제항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979년 5월 1일 서천면이 서천읍으로 승격되어 지역 거점 도시로의 발전도 기대되었다. 그러나 비인...
1950년 9월 27일 북한군이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의 서천등기소에 수감되어 있던 우익 인사들을 학살한 사건. 6·25전쟁 중에 남북한은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다. 국군은 국민보도연맹사건을 비롯하여 부역자 색출 등의 명목으로 민간인을 학살하였고, 인민군은 주로 우익 인사와 군경, 지주 및 지주의 가족들을 학살하였다. 서천등기소 학살 사건은 인천 상륙 작전 이후 후퇴...
1988년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화천리에 있던 정의여자중학교 및 정의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수업을 전면 거부하고 농성한 사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 전반의 민주화 속에서 곪아 있던 사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59년 개교한 정의여자중학교와 1956년 개교한 정의여자고등학교의 일부 교사들도 재단 이사장에게 채용 기부금 반환을 요구하는 등 이 같은 분위기...
1950년 9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에서 발생한 미군 폭격 사건. 6·25전쟁 당시 미군은 군사 작전을 수행하면서 수색보다 탱크 공격과 폭격을 우선 실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곳곳에서 민간 시설과 군사 시설을 구분하지 않은 미군의 공중 폭격에 의하여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었던 일제 강점기 수리조합.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식량과 원료의 공급지로 설정함과 동시에 일본에서 생산한 상품의 판매 시장의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토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쌀 증산을 목적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농사의 개량과 관개 수리 시설 확충을 도모하였다. 관개 시설의 확보를 위하여 제언과 보의 수축 사업이 필요하였다. 제언과 보의 수축...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 지역 오일장 상인들이 조직하였던 친목 단체. 서천 지역에서는 다수의 오일장이 운영되었다. 조선 후기에도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오일장의 개설은 꾸준하였다. 수리조합이 설립되고 농촌 진흥 운동이 추진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었다. 경남선 철도가 개설되고, 군산과의 교류가 늘어났으며 장항항이 발전하면서 서천 지역의 유통 경제가 증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