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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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담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5년 - 「남근석 설화」 동산리 주민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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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5년 - 「남근석 설화」 『서천읍지』에 수록 |
관련 지명 | 동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동산리 |
관련 지명 | 태월리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태월리![]() |
채록지 | 동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동산리![]() |
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동산리 마을 사람들|태월리 마을 사람들 |
모티프 유형 | 마을 간의 경쟁|남녀 결연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동산리의 고인돌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남근석 설화(男根石 說話)」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동산리 인근에 있는 남근석의 유래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남근석 설화」는 2015년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동산리에서 마을 주민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서천문화원에서 발행한 『서천읍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동산리 인근 마을 도로 밑에 ‘남근석’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마을에서는 바위를 파가지 못하게 타설하여 두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동산리는 오래전부터 옆 동네인 태월리와 남근석을 두고 경쟁을 하였다고 한다. 동산리와 태월리의 경쟁은 남근석이 지닌 신이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근석이 자리 잡은 동네는 마을의 홀아비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 반면, 남근석을 빼앗긴 동네는 과부들이 생겨 도망을 가거나, 젊은 여인들은 시집을 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근석이 있는 동네에서는 바위를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고, 남근석이 없는 동네에서는 바위를 가져가려 하였다.
어느 날 태월리 사람들이 남근석을 몰래 가져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남근석을 가져가서 수렁에 파묻은 후 땅으로 끄집어내지 않아서 이후로 한동안은 바위를 찾을 수 없었다. 바위가 어디 있는 줄 모르다가 몇십 년 후 태월리의 한 마을 사람이 남근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그제야 동산리 사람들이 바위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동산리 사람들은 한밤중에 동아줄을 들고 찾아가 남근석에 줄을 묶은 뒤 다 같이 합심하여 남근석을 수렁에서 빼내었다. 그렇게 하여 남근석을 다시 동산리로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바위의 자리를 정성스레 마련하였고, 남근석은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잘 잡게 되었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남근석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마을 간의 경쟁’과 ‘남녀 결연’이다. 남근석의 존재 유무가 마을 사람들의 혼인에 대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바위라는 주된 증거물에 지역민들의 신앙이 투영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암석의 ‘생산성’이라는 요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