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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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담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월 21일 - 「송구봉을 알아본 이율곡」 정의선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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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5년 12월 8일 - 「송구봉을 알아본 이율곡」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
관련 지명 | 원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 |
채록지 | 원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 |
성격 | 설화|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송익필|이이|이이의 아들 |
모티프 유형 | 역사 인물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에서 송익필과 이이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송구봉을 알아본 이율곡」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에서 전하여지는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1534~1599]과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일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송구봉을 알아본 이율곡」은 2010년 1월 21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에서 마을 주민 정의선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구봉 송익필과 율곡 이이는 서로 교류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하루는 율곡의 아들이 아버지가 상대적으로 출신이 미천한 구봉과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해하여 투덜거렸다. 그러자 율곡은 구봉이 오기로 하였으니 아들에게 따로 직접 상대하여 보라고 하였다. 대문 밖에 온 구봉은 “이리 오너라!” 하고 소리쳤는데, 율곡의 아들은 목소리만으로도 기가 죽어 기어서 마중을 나갔다. 그렇게 구봉을 집에 들여 잔뜩 대접하고 돌려보내니 그제야 율곡이 왔다. 아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율곡은 이미 예상하던 것처럼 반응하며 본인도 구봉에 비하면 부족한 사람이라며 아들을 나무랐다.
그 순간 율곡은 순간적으로 아들이 죽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편지를 하나 써서 아들에게 주며 잘 보관하였다가 죽게 될 때 사용하라고 하였다. 이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기 직전에 율곡은 죽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봉은 군인을 뽑는 책임자가 되었다. 율곡의 아들도 전쟁에 나서야 하였는데, 율곡의 아들은 징집을 거부하였다. 계속하여서 거부하자 사형에 처하기 위하여 구봉이 율곡의 아들을 붙잡아 왔다. 이때 율곡의 아들은 아버지의 당부를 떠올려 편지를 구봉에게 전달하였다. 구봉이 편지를 열어 보자 백지일 뿐이었다. 율곡이 백지를 보낸 것은 알아서 처분하여 달라는 뜻이었고, 구봉은 율곡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구봉은 율곡의 아들을 혼내고 나서 군법에 따라 처형하여야 마땅하나 옛 친구의 우의를 생각하여 살려 주겠다고 하며 율곡의 아들을 풀어 주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송구봉을 알아본 이율곡」의 주요 모티프는 ‘역사 인물’이다. 역사 인물인 구봉 송익필과 율곡 이이는 성리학과 예학에 밝았던 학자들인데, 서로 교류하며 당시 조선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었다. 또한 여러 제자를 배출하였는데, 서천 지역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송익필 문하에서 배출한 사람 중에 서천군수를 역임하였던 정엽(鄭曄)[1563~1625]과 같은 인물이 있다. 다만 송익필은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 몰두하였던 실제 역사와 다르게 전란 중에 쓰임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하나임에도 미천한 신분으로 인하여 크게 중용받지 못하였던 송익필이라는 인물에 대한 당대인들의 안타까움이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