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가의 민씨 할머니 명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233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0년 2월 9일 - 「인촌가의 민씨 할머니 명당」 이돈직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5년 12월 8일 - 「인촌가의 민씨 할머니 명당」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관련 지명 서천읍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지도보기
채록지 군사리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지도보기
성격 설화|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민씨 할머니
모티프 유형 명당과 풍수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에 민씨 할머니 명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인촌가의 민씨 할머니 명당」은 민씨(閔氏) 집안의 묏자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호남의 큰 부자로 유명한 인촌가(仁村家)의 민씨 할머니는 3대 여류 풍수 중의 한 사람으로 전하여진다. 조선 전기 태종(太宗)[1367~1422] 대에 낙향하여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살아 있을 때 미리 잡아 두는 묏자리]를 잡았고, 이후로도 집안 대대로 명당자리에 묘를 써서 좋은 집안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인촌가의 민씨 할머니 명당」은 2010년 2월 9일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주민 이돈직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인촌가의 16대 할머니인 여흥 민씨(驪興 閔氏)는 3대 여류 풍수 중의 한 사람으로 전하여진다. 민씨는 조선 전기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1365~1420]와 사촌지간이다. 태종이 외척 민무구(閔無咎)[?~1410] 형제를 배척할 때 민씨의 남편도 연루되어 화를 입었다. 민씨는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전라남도 장성군으로 낙향하였고 거기에서 자신의 신후지지를 잡았다. 민씨의 묘가 있는 자리에 가 보면 풍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알아볼 수밖에 없는 명당이라 하는데, 바로 복부대혈(伏釜大穴)[가마솥을 엎어 놓은 큰 혈]의 자리이다. 옛날에는 밥을 하여 먹는 가마솥이 생명줄이었기 때문에 복부대혈의 형세는 명당으로 인식되었다. 명당이 있는 동네의 이름도 솥이 운다는 뜻의 ‘명정(鳴鼎)’이다. 솥은 울어야 밥을 한다는 뜻이고 밥을 많이 하여 먹으니 자손이 번창한다는 것이다. 풍수가들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민씨 할머니의 집안인 인촌가는 대를 이어 현재까지 거의 대다수가 명당에 묏자리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집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모티프 분석]

「인촌가의 민씨 할머니 명당」의 모티프는 ‘명당과 풍수’이다. 민씨의 남편인 김씨는 조선 전기 태종 대에 화를 입고 죽었지만, 민씨는 전라남도 장성군으로 낙향하여 자신의 신후지지를 복부대혈에 잡았다. 그러면서 ‘내가 이 자리에 묻히면 말을 탄 자손이 앞 들판에 가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남편 김씨의 후손들이 장성하여 명문가를 이루었으니, 여성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집안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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