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209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호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2월 9일 - 「천방산과 신장군」 나주운에게 채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5년 12월 8일 - 「천방산과 신장군」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
관련 지명 | 천방산 -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 신농리![]() |
채록지 | 고마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고마리![]() |
성격 | 설화|민담 |
주요 등장 인물 | 신장군|승려 |
모티프 유형 | 약수와 천벌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과 문산면에 신장군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천방산과 신장군」은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 신농리에 있는 천방산(天房山) 굴속의 영험한 약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천방산 약수를 몰래 먹은 신장군(申將軍)이 절에서 추방당한 후 신농리에서 부인과 함께 땅을 개간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천방산과 신장군」은 2010년 2월 9일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고마리 주민 나주운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시대 천방산 백운사에서 신장군이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백운사의 승려들은 하나같이 힘이 세었는데, 승려들이 밤마다 밖으로 나가는 게 이상하였던 신장군이 어느 날 밤에 승려들의 뒤를 밟아 보았다. 승려들은 절 건너편으로 가더니 바위를 들어 젖혀 놓고 거기서 은복주로 물을 떠먹는 것이었다. 다 먹고는 다시 힘도 들이지 않고 바위를 내려놓고 나오는 것이었다. 신장군은 승려들이 먹은 물이 ‘장군수’가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승려들이 돌아간 뒤에 혼자 바위를 들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힘을 주어도 미동도 없었다. 그래서 절에서 같이 생활하던 또래 비구니와 함께 꾀를 내어 짚대를 연결해서 물을 빨아 먹었다. 승려들 몰래 몇 달간 물을 빨아 먹었더니 두 사람도 바위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졌다.
그런데 힘이 너무 세진 승려들이 점점 자만하게 되어 절에 불공을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하였다. 또한 자기들만 누리고 싶었던 물을 신장군이 몰래 먹은 사실을 알고는 문산면 신농리 ‘재뜰’이라는 곳으로 두 사람을 추방하였다. 그 후 재뜰에서 신장군과 비구니는 부부가 되었고 땅을 개간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신장군이 아침밥을 먹을 동안에 부인 혼자 400평이나 되는 논을 가뿐하게 만들어 냈는데, 신장군 부인이 일군 땅을 ‘말배미’라고 한다. 못된 짓을 일삼던 승려들이 있던 절은 하늘에서 내린 천벌로 벼락을 맞아서 없어졌고, 당시의 장군수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모티프 분석]
「천방산과 신장군」은 ‘약수와 천벌’이다. 약으로도 고치기 어려운 병이 있으면 하늘의 영험한 힘의 도움을 받아 기적같이 낫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영험한 약수를 먹고 나쁜 짓을 한 승려들이 벌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인과응보이다. 종교적인 계율을 지키기는커녕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는 승려의 모습은 당시 불교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신장군은 약수로 얻은 힘을 부인과 함께 땅을 개간하고 마을을 번영하도록 이끈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아기장수 설화의 변형이다. 아기장수는 어리석은 부모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신장군은 아내와 함께 땅을 개간하여 신농리 마을을 잘살게 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장군 같은 인물이 현실에서 나타나 주기를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