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에 하관하고 미시에 발복하는 명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183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0년 1월 21일 - 「오시에 하관하고 미시에 발복하는 명당」 박윤화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5년 12월 8일 - 「오시에 하관하고 미시에 발복하는 명당」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관련 지명 나교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나교리
채록지 나교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나교리지도보기
성격 설화|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총각|지관
모티프 유형 명당과 발복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나교리에 명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오시에 하관하고 미시에 발복하는 명당」은 머슴살를 하던 가난한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묏자리를 험한 가시밭에 대충 썼으나, 하관하자마자 발복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오시에 하관하고 미시에 발복하는 명당」은 2010년 1월 21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나교리 주민 박윤화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한 가난한 총각이 머슴살이를 하던 중에 어머니가 죽었다. 초상이 났다고 이웃집에 술 한잔 대접할 형편도 안 되었고 묏자리 구할 여력이 전혀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아들은 살아생전에 어머니가 자신을 위하여 하여 준 것이 없어서 늘 서운하였다. 그래서 “아이고! 어머니 생전에 그렇게 내게다 하여 준 것이 없으니까, 어머니도 가시밭에서 좀 살아 보시오.” 하면서 상여도 없이 지게에 송장을 짊어지고 가시밭으로 갔다. 혼자 가시를 쳐내고 땅을 팠지만 제대로 된 묏자리는 나오지 않고 조그마한 구덩이만 겨우 팠다.

아들이 구덩이에 시신을 넣으려는데, 좁아서 못 들어갈 정도여서 시신을 틀어 아무렇게나 묘를 썼다. 마침 지나가던 지관이 보니, 그 자리가 명당자리였다. 지관이 기가 막혀서 “이게 바로 오시(午時)[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하관에 미시(未時)[오후 1시부터 오후 3시]에 발복한다고 하는 명당이여. 너 당장에 발복할 수야. 당장에!” 하고 말하였다. 아들은 “남의 집 일이나 한다고 얕보고 미친놈이 미친 소리 하는구나.” 하면서 다시 머슴 일을 하러 갔다. 이튿날 아침 일찍 똥장군을 지고 밭에 나갔는데, 한 여자 걸인이 벌벌벌 떨고 서 있길래 데리고 주인집으로 갔다. 주인네는 다행스럽게도 여자 걸인을 받아들여서 머슴과 짝을 맺어 주었다.

부부는 오두막집에 살게 되었는데, 하루는 아내가 작은 논 나온 거 있는지 알아보라는 말을 하였다. 그때는 노름하느라고 논을 파는 일이 수두룩하였다. 그중에 노른자위 땅이 나왔다고 하였더니, 돈 걱정 말고 계약을 하라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계약을 하고 왔더니, 아내가 걸인이었을 때 입었던 옷 한쪽 편을 뜯어 냈다. 허술하여 보였던 옷이 사실은 다 돈으로 속을 누벼서 꿰맨 옷이었던 것이다. 옷 속에 숨겨 두었던 돈으로 수십 섬지기 논을 산 부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오시에 하관하고 미시에 발복하는 명당」의 모티프는 ‘명당과 발복’이다. 이야기의 아들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도 아닌데도 오시에 하관하고 미시에 바로 발복하는 묏자리를 얻었다. 좋은 명당자리는 사람의 인품보다 하늘에서 내려 주는 운명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고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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