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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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중환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 「한산 이씨와 시조 호장공 이야기」 신광호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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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5년 12월 8일 - 「한산 이씨와 시조 호장공 이야기」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
관련 지명 | 호장공묘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
채록지 | 보현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보현리![]() |
성격 | 설화|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한산 이씨 집주인|수령 |
모티프 유형 | 명당에 대한 선망과 시기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한산 이씨 시조 호장공의 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한산 이씨와 시조 호장공 이야기」는 한산 이씨(韓山 李氏)의 시조 호장공(戶長公) 이윤경(李允卿)의 묘가 조성된 계기를 담은 풍수담이다. 묘소에는 원래 집이 있었는데, 고을 수령이 땅에서 훈기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채고 조사하였다. 한산 이씨였던 집주인은 집터가 명당임을 알아채고 땅을 빼앗기지 않고자 기지를 발휘하여 결국 시조인 호장공 이윤경의 묘를 조성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한산 이씨와 시조 호장공 이야기」는 2010년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보현리 주민 신광호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한산 이씨 시조 호장공의 묘소가 한산면사무소 바로 옆에 있다. 원래 호장공의 묏자리에는 집이 있었는데, 땅에서 훈기가 올라와 건물의 마루청이 자꾸 썩는 바람에 매년 마루청을 한 번씩 갈아야 하였다. 고을 수령이 이상하게 여겨 집주인에게 달걀 두어 개를 거기다 한 번 묻어 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집주인은 집터가 명당자리임을 미리 알아채고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이미 곯은 달걀을 가져다가 묻어 놓았다. 며칠이 지나도 달걀이 부화하지 않자 수령이 달걀을 꺼내 보도록 하였는데, 이미 곯은 알들이라 달걀이 모두 썩어 있었다. 이렇게 하여 땅을 빼앗기지 않은 집주인이 집터에 무덤을 썼는데, 바로 한산 이씨 시조묘인 호장공묘[호장군묘]이다.
[모티프 분석]
「한산 이씨와 시조 호장공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에 대한 선망과 시기’이다. 이야기는 서천 지역의 명문가인 한산 이씨가 시조묘 자리를 선점하게 된 과정에서 한산 이씨 선대 조상 한 사람의 기지와 재치가 발휘되었다는 내용이다. 한산 이씨 가문은 대대로 명사와 고관대작을 배출한 명문가로서 서천 일대에서 누구나 선망하였던 집안이었다. 하지만 명문가를 바라보는 지역 사람들의 시선에는 선망과 함께 질시의 관점도 섞여 있었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에서 수령이 해당 집터에 달걀을 파묻도록 지시하였는데, 한산 이씨의 선대인 집주인은 명당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곯은 달걀을 파묻었다고 전한다. 명당자리를 차지한 한산 이씨 집안의 발복을 부러워하는 주위 사람들이 한산 이씨가 명당을 차지한 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던 심리적 동기를 내포한 것이다. 가문의 번창이 명당 묘소의 영향이라고 믿던 사람들이 뛰어난 명당을 독점한 명문가 한산 이씨 집안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상호 모순되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