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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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중환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2월 11일 - 「임진왜란 전의 이재송송 비결」 박현구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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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23년 5월 31일 - 「임진왜란 전의 이재송송 비결」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
관련 지명 | 송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 |
채록지 | 송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 |
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이여송|왜군 |
모티프 유형 | 소나무와 이여송 장군과 왜군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 일대에 전하여지는 ‘이재송송 비결’에 대한 이야기.
[개설]
「임진왜란 전의 이재송송 비결」은 ‘이재송송(利在松松)’이라고 하는 비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재송송이라는 비결은 명나라의 장군 이여송(李如松)[1549~1598]의 이름과 연관이 있다. 명나라의 장군 이여송은 평양성(平壤城) 전투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평양성을 탈환하였으므로 왜군들이 이여송 장군을 무서워하였다. 이여송의 이름에 ‘송(松)’ 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송’ 자가 들어가는 마을에는 왜군들이 침입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채록/수집 상황]
「임진왜란 전의 이재송송 비결」은 201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2010년 2월 11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 주민 박현구로부터 채록하였다.
[내용]
임진왜란(壬辰倭亂) 전에 ‘이재송송’이라고 하는 비결이 있었다. ‘이재송송’이란 ‘이로움은 소나무에 있다.’는 뜻이라고 알려져 있는 비결이었다. 제보자의 13대조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직전에 낙향을 하여 ‘솔뫼’, 즉 ‘송산’[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이라 불리는 곳으로 옮겨 왔는데, ‘이재송송 비결’대로 송산으로 가면 난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보자의 집안은 그때 송산으로 옮겨 와 살아서 임진왜란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재송송의 비결은 명나라의 장군 이여송의 이름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명나라의 장군 이여송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왜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조선으로 온 장군이었다. 이여송은 평양성 전투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평양성을 탈환하면서 왜군의 기세를 꺾었던 것으로 유명하였으므로 왜군들이 이여송 장군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렸다고 한다. 그 이여송 장군의 이름에 ‘소나무 송’ 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동네 이름에 ‘소나무 송’ 자가 들어가는 곳에는 왜군들도 무서워서 침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티프 분석]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티프는 ‘소나무와 이여송 장군과 왜군’이다. 이여송 장군이 이끄는 명나라군과 조선군은 평양성 전투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평양성을 탈환하면서 왜군의 기세를 꺾었던 것으로 유명하였다. 평양성 전투 뒤에는 왜군의 반격을 받고 태도를 바꾸어 소극적인 태세를 유지함에 따라 조선 사람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여송이 이끈 평양성 전투에서의 승리는 왜군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 준 사건이었다. 평양성 전투의 영향과 기억은 왜군들뿐 아니라 조선 사람들에게도 큰 것이었다. 이여송의 이름에 들어가 있는 ‘소나무 송’ 자 하나만 들어도 왜군들이 겁에 질렸다고 하는 이야기 속의 비결은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바꾼 평양성 전투 승리가 조선 사회 전체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 주는 전설이다. 또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 속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안전한 곳을 찾아 헤매던 당시 민중들의 고통과 희생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