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산 칼꽂이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141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중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 「봉황산 칼꽂이 전설」 서병렬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2년 12월 31일 - 「봉황산 칼꽂이 전설」 『한산면지』에 수록
관련 지명 봉황산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온동리지도보기
채록지 용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백제 장수
모티프 유형 백제 멸망의 기억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 화곡에 봉황산 칼꽂이 바위굴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봉황산 칼꽂이 전설」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한 바위굴에 백제 장수가 칼을 꽂아 둔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하는 전설이다. 바위굴은 백제 멸망 당시 당나라와 싸운 백제 장수가 살던 집이라고 전한다. ‘칼꽂이’라고 불리는 흔적은 백제 장수가 바위굴에 들어갈 때 칼을 꽂아 두었던 흔적이라고 전한다.

[채록/수집 상황]

「봉황산 칼꽂이 전설」은 2012년 12월 31일 서천문화원에서 간행한 『한산면지』에 수록되어 있다. 1990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 주민 서병렬로부터 채록하였다.

[내용]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 화곡마을과 용산마을은 마치 용 모양처럼 흐르는 봉황산에 의하여 경계가 이루어져 있다. 봉황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용산리 일대의 마을들에는 봉황산에 있는 바위굴에 대한 전설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봉황산 북쪽 중턱에 바위로 이루어진 굴이 있는데, 백제의 어느 장수가 살던 집이었다고 한다. 바위굴에는 장수가 쉬던 흔적이 있는 바위도 있고, 크게 패여서 물이 고인 바위도 있는데, 물이 고인 바위는 백제 장수가 전투 중에 소변을 보았던 곳이라고 한다. 바위 옆에는 백제 장수가 바위 속에 만들어 둔 집에 들어갈 때 칼을 꽂아 둔 흔적이라는 납작한 칼집 모양과 ‘칼꽂이’ 흔적이 세 군데 남아 있다고 한다. 전설 속의 백제 장수는 백제가 멸망할 당시 당나라 군대와 싸웠던 사람이라고 전한다. 백제 장수는 밤낮없이 쳐들어오는 당나라 군대와 용맹하게 싸웠지만 백제가 당나라 군대에게 항복하였다는 소식이 들리자, 세상이 바뀌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바위굴 속으로 들어가서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봉황산 칼꽂이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백제 멸망의 기억’이다. 이야기에는 당나라 군대와 싸웠다는 백제 장수가 등장하고, 장수가 살았다는 바위굴이 나온다. 이야기가 전하여지는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 일대는 금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백제 멸망 당시 당나라 군대가 사비성[현 충청남도 부여군]으로 가기 위하여 진입하였던 곳이다. 즉, 백제로 가는 관문이자 백제와 당나라 사이 치열한 전투와 정보전이 펼쳐졌을 위치이다.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은 커다란 바위굴이 백제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던 백제 장수의 집으로 인식된 것은 일대에서 전개된 전쟁의 기억과 전승이 바위굴에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백제 장수가 백제 멸망과 함께 바위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남긴 말은 지역 사람들이 품은 백제 부활의 꿈이 전설 속에 투영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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