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치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119
이칭/별칭 비사치기,망까기,비석차기,비석까기,비석타,석타,석유,돌맞추기놀이,석타유,석축놀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손바닥만 한 납작한 돌을 차거나 던지면서 노는 어린이 놀이.

[개설]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전하여 오는 비석치기는 손바닥만 한 납작한 돌을 세워 놓고 얼마간 떨어진 거리에서 돌을 던지거나 차서 세워 놓은 돌을 맞혀 넘어뜨리는 놀이이다. 주로 어린이들이 편을 나누어 즐기는 놀이이다. 지역에 따라 비사치기, 망까기, 비석차기, 비석까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놀이 방법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연원]

‘비석치기’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입으로 전하여 오고 있다. 하나는 조선 시대에 미운 탐관오리의 송덕비 빗돌[비석(碑石)]을 돌이나 발로 차서 넘어뜨렸던 데에서 생겨났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돌을 날려서[비석(飛石)] 노는 놀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인데, 이칭인 비사치기도 이러한 이유로 사기그릇 조각을 날려서[비사(飛砂)] 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 무라야마 지준이 쓴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郷土娯樂]』에는 비석치기 놀이를 비석타(碑石打), 석타(石打), 석유(石遊), 돌맞추기놀이, 석타유(石打遊), 석축(石蹴)놀이, 비사치기 등 여러 이름으로 기록하여 놓았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원래 비석치기에 쓰는 돌은 납작한 돌을 사용하는데, 놀이 장소 주변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돌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서 사용한다. 현재는 민속놀이 보급 단체나 놀이 지도사에 의하여 어린이들의 체험 놀이로서 놀게 되면서 나무토막으로 만들어진 비석을 사용한다. 이렇게 놀이 도구가 바뀐 것은 안전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며, 주변에서 적당한 돌을 구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놀이 방법]

비석치기 는 주로 남자 어린이들 사이에서 전승되었던 놀이이다. 놀이에 사용하는 비석은 납작하고 매끄러운 돌을 사용한다. 비석을 발로 차거나 던졌을 때 상대의 비석을 쓰러뜨리기 쉽게 표면이 매끄럽고 단단한 것이 좋다. 서천 지역에서는 이 비석을 ‘목자’라고 한다.

놀이 방법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당이나 공터에 던지는 선을 긋고, 이 선에서 2~3m 떨어진 앞쪽에 나란히 비석을 세운다. 편을 나누어 가위바위보로 선공과 후공을 정하면 이긴 편부터 비석을 던진다. 주요 동작은 ‘손으로 던지기’, ‘한 발로 밀어 차기’ 등을 비롯하여, 구두[발등], 토끼[양발 사이], 무릎, 배꼽, 어깨, 눈·코·입·귀, 떡장수[머리] 등과 같이 비석을 신체의 각 부위에 얹어서 넘어뜨리는 단계가 있다. 승부는 모든 단계를 먼저 끝내는 편이 이긴다. 각 단계는 같은 편이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다섯 명이 한편인데 떡장수에서 세 사람은 실패하고 두 명만 성공하였을 경우, 나머지 두 명이 나머지 비석을 쓰러뜨리면 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비석놀이는 놀이를 통하여 운동 능력을 향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 균형 감각을 길러 준다. 아울러 같은 편끼리 힘을 합하여야 상대편을 이길 수 있는 편 놀이이기 때문에 협동심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역동적인 놀이이다.

[현황]

비석치기 는 1970~1980년대까지 서천군 전 지역에서 전승되었으나 마을의 노령화·공동화 등으로 인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최근에는 어린이들의 체험 놀이로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비석치기를 행하는 사례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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